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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Nov 18. 2021

라탄같은 인간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가 된 날이었다. 라탄을 만드는 날이었다. 하나하나 엮으면 단단해지는 바구니. 라탄 가방을 좋아해서 종류별로 산 적은 있지만 만들어 본 적은 없었다. 처음이었다. 바구니, 가방, 시계, 쟁반, 전등 등 여러 개의 라탄 물건 중 연필꽂이를 만들기로 했다. 아래 동그란 판에 구멍이 뚫려 있고 그 구멍에 라탄 환심(나무실)을 꽂아서 세로로 여러 개를 세웠다. 건축할 때의 기둥 같은 역할이었다. 그 기둥들을 바탕으로 가로로 나무 실을 두르기 시작하는데, 기둥의 안으로 들어갔다가 밖으로 나왔다가를 반복하면 한 줄이 완성되고, 연결해서 아까와는 반대로 쌓아 올리면 두 번째 줄이 완성되었다.  

시작하기 전 재료 중 하나인, 나무 심지들은 물에 담가 놓는다. 나무가 물기를 머금어야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촉촉해진 나무 실은 잘 구부러졌다. 조금 단단한 고무줄처럼 자유롭게 휘었다. 한 바퀴 두르다가 물기가 증발되면 분무기로 물을 뿌려 다시 촉촉하게 만들었다.

혹시라도 수분이 날아가 딱딱해진 나무 실은 ‘툭’ 하고 부러졌다. 중간에 박혀 부러지면 난처했다. 만드는 과정 중에는 중요한 건, 첫 번째로 촉촉함 유지였고, 두 번째로 세로의 기둥들이 삐뚤어지지 않도록 중간중간 밀어주기였다.     


어디 라탄 환심뿐이겠는가? 



사람도 촉촉해야 부드럽고 너그러웠다. 



딱딱하고 건조한 마음은 쉽게 화가 나고 부러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쉬웠다. 사람뿐 아니라, 시간 속에도 존재했다. 살아가다 보면 촉촉한 시기가 있고 딱딱한 시기가 있다.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없을 때면 저절로 딱딱해졌다. 스스로 건조해지는 줄도 모른다. 이러다가 곧 부러지겠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분무기로 물을 뿌려야 한다. 산책을 하고, 미술관을 가고, 낮잠을 자고,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며 물기를 머금어야 한다. 


  

처음에 한 줄, 한 줄씩 엮을 때에는 고양되어 있었다. 재미있고, 대화도 나누며 작업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반복적인 행동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한 거 같은데 반밖에 못했을 때에는 갑자기 기분의 셔터가 내려갔다.     


‘지금까지 이것밖에 못 한 거야? 언제 다하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표정이 석고상처럼 굳어 갔고, 움직임에 활기가 줄어들었다. 손을 살랑거리며 신나서 하던 한 시간 전의 내 모습을 나조차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시간 차를 두고 나타난 두 기분이 낯설었다.     

그 순간, 매뉴얼에 있는 방법 말고 빨리 만드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다. 속도를 내고 싶은 마음과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샛길을 만들었다.     


‘한 줄 말고, 두 줄로 해볼까? 시험도 아닌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      


지루함이 빚어낸 찬란함이었다. 한 줄로 엮다가 두 줄로 엮기 시작했다. 속도는 4배가 빨라지는 기분이었다. 금방 높이를 더해갔다. 나무 실 두 줄을 한 바퀴, 두 바퀴를 돌려놓고 보니 모양도 특별했다. 아래는 촘촘했고, 위에는 굵직했다. 하나의 기법으로 만들면 심플한 느낌이 들었고 두 가지 기법으로 만들면 다채로운 느낌이 들었다. 한 줄이면 한 줄로, 두 줄이면 두 줄로 일관성 있게 만드는 게 보통의 일이었다.      

보통에서 벗어났지만, 그것이 나다운 연필꽂이였다. 지루함에 반만 하고 멈추어 선 것도 나였고, 종이에 적힌 매뉴얼에서 벗어나 볼까? 하고 생각을 한 것도 나였다. 완성된 연필꽂이 안에 고민의 시간이 꼬임으로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어떤 세계든 경험하면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라탄을 만들기 전에는 집에 있는 라탄 가방들의 아름다운 디자인에만 주목했다. 지금은 그 가방들을 보며 다른 생각을 한다. 한 줄 한 줄 엮는 정성스러운 노동과 규칙성을 유지해야 하는 집중력, 마무리의 꼼꼼함을 본다.     



라탄 같은 인생이 살고 싶어졌다. 

시간을 차곡차곡 쌓으며

촉촉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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