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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Nov 22. 2021

누워서 하는 축구

여행을 하면서 하나의 문화가 생겼다. 여행지가 어디든 그 지역의 대학교를 방문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유명한 관광지 위주로 계획을 짰는데,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들어간 캠퍼스가 좋았다. 대학교는 부지도 넓고 교정도 잘 가꾸어져 있었다. 작은 식물원을 찾아가는 것보다 더 개성적이었다. 오월에 들른 교정의 벤치에는 연보랏빛 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등나무 꽃이었다. 하늘을 바라보면 보랏빛 물결이 찰랑거렸고, 멀리서 보면 크리스털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듯했다. 그 안에 머물르는 것도 좋고 멀리서 바라보는 것도 좋은 계절이었다.     


가을의 연못 위에는 초록 접시가 펼쳐 있었다. 연못을 들여다보는 일은 거울을 보는 일 같았다.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이름 모를 생명체들이 그려내는 포물선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잠깐 선명했던 포물선이 점점 옅어지고 다시 생겨나는 걸 한참 바라보았다. 대학교의 조경도 좋지만 잊고 지낸 그 시절의 추억이 카세트테이프처럼 재생되었다. 시간여행을 하는 듯 활기가 넘쳐흐르던 시간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 공간이 더 좋아졌는지도 모르겠다.      


춘천을 여행하며 주말 아침, 숙소에서 가까운 대학교에 들렀다. 가운데는 축구를 할 수 있는 연두색 잔디밭이 있고 겉에는 오렌지색 육상 트랙이 있었다. 오렌지색과 연둣빛은 거대한 오렌지처럼 상큼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계단에 앉아서 아침을 먹었다. 뽕잎이 콕콕 박힌 김밥 하나를 입에 넣고 뜨거운 컵라면을 호호 불어가며 국물을 마셨다. 별 것 없는 식사였는데도 풍경이 좋아서였을까? 어떤 식사보다 맛있었다. 쓰레기를 봉지에 넣어 차에 갖다 놓고 트랙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떤 부부는 손을 꼭 잡고 트랙을 걸었고 축구장에는 축구가 한창이었다.


중학생처럼 보이는 그들의 축구 패션이 예뻤다. 운동복은 대부분 검은색이나 회색이었지만 신발은 민트색, 형광핑크, 오렌지색, 빨강 등 컬러풀했다. 발들이 우르르 저리로 갔다가 우르르 이리로 왔다. 한 쌍의 츄팝춥스가 움직이는 듯 축구화만 보였다. 


그러다가 시선을 옮겼는데 골키퍼가 누워있었다. 



그 앞에 텔레비전만 있으면 딱 거실인 것 같은 포즈였다. 한 손을 머리에 괴고 너무 편안하게 누워 있어서 무슨 일일까 생각했다. 계속 상황을 지켜봤다. 누워 있는 골키퍼 쪽으로 상대가 골을 몰고 오자 번개처럼 일어나서 공을 막았다. 공은 다시 반대편으로 가게 되었고, 그 학생은 다시 잔디에 누웠다. 몇 분 뒤, 공이 또 골 쪽으로 향했다.     


“야~ 일어나.”     



같은 팀 선수가 외쳤다. 


누워서 하는 축구였다. 


이제껏 수많은 축구경기를 봤지만 이런 경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공보다 그 친구의 눕방에 시선을 더 빼앗겼다. 얼마나 잘 눕는지, 포즈도 침대 광고 같았다. 하나의 룰이 있다면 공을 봐야 하기 때문에 꼭 옆으로 누웠다. 하늘을 보거나 공과 등져서 눕지는 않았다. 저 자유분방하고 쾌활한 축구가 다소 충격적이었는데 더 충격적인 건, 그 친구가 골문을 다 막는 거였다. 게으르고 나태한 선수가 아닌 실력을 겸비한 선수였다. 처음 보는 광경에 생각의 자물쇠가 열렸다. 두 가지의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로는 누웠다가 일어나는 걸 반복하는 게 더 많은 체력 소비가 들겠다. 

두 번째로는 골키퍼에게 상대편에 골이 가 있는 시간은 쉬는 시간이니까 그 시간을 잘 활용하는 영리한 방법이다.     


축구를 사랑하는 중학생들끼리의 일요일 오전의 시간. 

축구 좀 누워서 하면 어떤까? 

물론 실력이 누우면 안 되겠지만 말이다.

그들의 컬러풀한 축구화 같은 생각에 응원을 보낸다.     




글은 누워서 쓰면 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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