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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Oct 12. 2021

재미 버튼

( 물방울 거울 )

“오늘은 학교에 청바지에 흰 티를 입고 갈 거야.”

“왜?”

“어제 재희가 그렇게 입자고 제안을 했거든.”     



11살의 아이가 그렇게 말하며 집을 나섰다. 하원 후 청바지처럼 경쾌한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오늘 애들 거의 다 흰 티에 청바지를 입고 왔어.”

“진짜? 몇 명만 그렇게 입는 거 아니었어?”

“여자 애들 거의 다 입었어. 선생님이 너희들 옷이 왜 다 똑같나며 깜짝 놀라셨어. 그리고 깜찍하다면서, 이런 건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며 모여서 사진을 찍어 주셨어.”     


코로나로 주 2회만 학교를 갔다. 쉬는 시간도 5분으로 짧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부족했다.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어울려 놀 시간도 없어서 안쓰러웠는데, 한 친구의 제안이 특별한 날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예뻤다. 옷, 하나로 한 팀이 된 듯 마음이 모아 지고, 거울을 보듯 서로의 모습을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했다. 특별했던 하루는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에 남을 진한 추억이 된 것 같았다.   

   

다음날, 우리 가족도 흰 티에 청바지를 입어보는건 어떨까? 생각했다. 반 친구들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다. 평소에 아이는 무채색의 옷, 아빠는 운동복, 나는 컬러풀한 원피스를 즐겨 입었다. 각자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다른 취향의 옷들을 즐겨 입었다.

그런 우리가 아침에 흰 티에 청바지를 입는 순간, 올림픽의 양궁선수들처럼 한 팀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누구의 제안이든 더 귀 기울여 듣게 되고, 협동하게 되고, 계단을 오를 때에도 파이팅을 외쳤다. 옷 하나의 마법이었다. 사람은 같고 옷만 바꿔 입었을 뿐인데, 마음을 맞추기가 더 쉬워졌다.      

친구의 제안 하나가 재미를 가져다주었다. 반 친구들을 거쳐, 우리 가족까지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재미는 가만히 있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생각하고, 제안하고, 행동하고, 반응할 때 생겨났다.



잊혀 지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 재미가 넘쳐흐르는 놀이기구에 더 강력한 재미를 더한 곳이었다. 3년 전, 파리였다. 에펠탑을 보고 공원을 가로질러 나가는 길이었다. 한 쪽에 아이들이 모여 있기에 가까히 가보니 작은 놀이기구가 있었다. 거대한 원형 지붕 끝, 철봉에 목마들이 달려 있었다. 일하는 청년이 가운데 기둥 손잡이를 잡고 달리면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동이 아닌, 수동이었다) 청년이 달리기 시작하면 지붕 끝에 매달린 목마들이 덩달아 움직였다. 빠르게 달릴수록 속도감이 더해졌다. 그네처럼 나는 회전목마를 타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 즐거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나의 장치가 더 있었다. 한쪽에 고리 세 개가 끼워져 있는 기둥이 있었다. 아이들은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타며 막대기를 고리 안에 끼워 넣으려고 애썼다. 움직이는 와중에 막대를 끼워 넣기란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 지점에 다다른 아이들은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꼭 넣고자 하는 열망의 눈빛이 레이저처럼 새어 나왔다. 대부분은 고리에 막대를 넣지 못했지만 성공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성공하면 놀이기구를 공짜로 한 번 더 탈 수 있었다. 아이들은 막대를 고리에 끼우고 싶어 몇 번을 더 타기도 했다. 회전목마에 고리 끼우기를 더했더니 재미가 극대화되었다. 회전목마가 평범한 일상이라면 고리끼우기는 이벤트였다. 재미 버튼이었다.     


친구가 제안한 흰 티에 청바지 입기 재미버튼(동참)을 누르지 않았다면 무늬 없는 하루가 되었을 것이다. 늘 보던 회전목마라고 스쳤다면 고리끼우기의 재미(우리 나라에서는 못 본)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는 재미버튼이 곳곳에 놓여 있다. 

그 버튼을 발견하고 누르고 반응하는 사람만이 재미를 온 몸으로 감각할 수 있다. 






< 오늘의 언박싱 _ 거울 >


이사를 하면서 네모 모양이 아닌 물방울 모양의 거울을 샀다.

남편은 전신이 보이지 않는다며 보는 내내 불만스러워 했다.

다른 날, 전신 거울을 다시 샀다. 

결국 이 거울은 보는 용도의 물건이 아닌 어떤 감정을 투영하는 거울이 되었다. 

카페처럼 공간의 분위기를 담당하기도 하고 소품들은 2개로 만드는 마법의 거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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