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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Mar 29. 2024

남편에게 플러팅하다.

중국집에서 바다를 품은 것 같은 짬뽕이 나온다. 껍질에서 홍합을 발라내고, 미니낙지를 가위로 자른 후, 가장 좋아하는 솔방울 모양의 오징어 하나를 집어 남편의 짜장면 그릇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말한다.


“여보, 이거 플러팅이야.”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던 중학생, 딸이 시크하게 묻는다.

“15년 차 부부도 플러팅 해?”     


요즘 미디어에서 플러팅이란 단어가 자주 들려왔다. 상대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행위로, 플러팅 장인으로는 덱스가 손꼽힌다. 유퀴즈에서 덱스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제가 플러팅 남으로 불리다 보니, 어느 날 혼자 고민해 보았어요. 내가 그렇게 아무나 꼬시는 사람인가? 근데 그게 아니고, 현재 이 사회가 칭찬에 너무 야박하지 않나요? 저는 그냥 상대의 좋은 점을 짚어주고 말해주고 싶을 뿐인데, 그걸 플러팅이라고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요. 이제 어딜 가서 칭찬을 못 하겠더라고요.”     

솔직하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일. 상대를 배려하는 순수한 의도가 플러팅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씁쓸했다. 덱스의 말대로 사람들 사이에 다정한 눈빛과 행동이 흔하지 않다 보니, 누군가 그런 배려를 받으면 “저 사람 혹시 나 좋아하나?” 오해하는 듯했다. (덱스가 해서일 수도 있다.)    


문득, 플러팅의 종착역이 결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다른 방식의 플러팅을 했기에 두 사람이 결혼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결혼이 플러팅의 절정기이라면, 결혼 후에는 하강기, 아니 소멸기로 돌입한다. 아니, 어쩌면 플러팅이 존재하고 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플러팅은 미혼남녀만 쓰는 단어일까? 유부남 유부녀가 플러팅 하면 불륜이 되지만, 부부가 플러팅을 한다면 어떨까?


그 생각으로 늘 하던 행동에 ‘플러팅’이라는 이름표를 달기로 했다. 전에는 말없이 남편의 입가에 묻은 김칫국물을 닦아주었다면 이제부터는

“여보 김칫국물이 묻었네? 내가 닦아줄게. 이거 플러팅이야.”

스웨터 안에 들어간 와이셔츠 깃을 빼주며 “여보. 이거 플러팅이야.”

마트에 가서 남편이 좋아하는 새우깡을 사서 건네며 “이거 플러팅이야.”

차에 타서 온열 시트를 틀어주며 “이거 플러팅이야.” 한다.     


생각해 보면 남편의 행동들도 다 플러팅이었다. 편지 플러팅, 꽃다발 플러팅, 무거운 짐 들어주기 플러팅 등. 부부가 삶 속에서 하는 대부분의 행동이 배려고, 사랑이다.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당연 하게 여길 뿐이다.

덱스의 말처럼 표현하지 않고 살았던 것 아닐까?


미혼들의 플러팅은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자제해야 하지만, 부부는 플러팅을 남발해야 한다. 그래야 무미건조한 사이가 미스트를 뿌린 듯 촉촉해질 수 있다. 오늘은 어떤 플러팅을 할까? 고민한다.

오징어 국 플러팅을 할까?

마스크팩 붙여주기 플러팅을 할까?


플러팅의 세계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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