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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Jun 20. 2023

어린이가 인터뷰하다

재미의 속성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즐거운 것은 캠핑이다.


네 가족이 한 캠핑장에 모였다. 텐트를 설치해서 인스턴트 집을 만들고,  테이블과 의자를 펼쳐 마당을 만들었다. 얼마간의 노동 후 시원한 얼음을 컵에 넣어 만든 하이볼은 행복의 맛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초록의 산과 들은 거대한 샐러드 같았다. 목을 적시는 시원함과 눈을 적시는 상큼함이 조화로웠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자연 이곳저곳을 누비며 놀았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으니 그것이 음악이 되어 부모인 우리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캠핑의 꽃은 저녁. 친구가 집에서 밀가루로 세 번 씻었다는 문어가 등장했다. 그 옆에는 보쌈과 육회, 파김치와 묵은지가 차례대로 놓였다.


캠핑에 모여 있으면 아파트에서는 정을 느꼈다. 마치 작은 마을을 이루어 사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는 요리를 좋아해서 맛있는 음식을 차리고, 누군가는 자기가 좋아하는 부동산 지식을 공유한다. 또 누군가는 소리 없이 궂은일을 처리한다. 아이들도 물놀이를 하는데 슬리퍼가 없으면 자기 것을 내어주고, 모기에 물리면 약을 발라주고, 수박을 나눠먹고, 늦게 온 친구 것을 따로 챙겨 놓는다. 캠핑장의 환경처럼 서로에게 벽이 없다.


저녁이 되어 불을 지폈다. 모두가 온기를 찾아 불 곁으로 모여였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마시멜로를 꼬치에 꽂아 구웠다. 불길이 세고, 요령이 없으니 금방 검게 그을렸다. 달콤함을 맛보기 위해 입술에 묻은 검은 숯은 상관 없었다. 삼촌이 천천히 구운 마시멜로는 탄 곳이 하나 없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 천상의 맛을 보기 위해 줄을 섰다. 불 앞의 권력은 마시멜로굽기였다.


달콤했던 시간이 끝나자 아이들이 하나, 둘 텐트로 자리를 옮겨 자기들만의 놀이를 즐겼다. 그런데 00 이는 계속 어른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친구는 아들을 다른 아이들 곁에 보내려고 했지만, 그곳은 재미없다며 불 앞에 있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이런 제안을 했다.


< 00이의 인터뷰시간 >

이모, 삼촌들한테 평소 궁금했던 것 물어보는 거 어때? 네가 기자가 되는 시간이야.


"기자요?"


아이는 까만 밤하늘을 한 참 바라보았다. 질문이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친분이 있는 이모와 이모부를 향한 질문은 금방 생각이 났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질문을 떠올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드디어 입을 열었다. 조용한 밤 아이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이모와 이모부는 처음에 어떻게 만났어요?"

"이모를 잘 아는 어른이랑, 이모부를 잘 아는 어른이 있는데, 둘이 잘 어울린다며 소개해줬어. 그래서 만나게 되었지."

"그분들 예언가네요."


선을 주선한 분들을 가리켜 예언가라니... 철학적인 표현이었다. 어떻게 둘이 만나 결혼할 줄 알고 소개를 시켜주었냐는 의미가 예언가라는 단어에 포함되어 있었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이모는 글을 쓸 때, 어떤 기분이 들어요?"

"처음에는 무엇을 쓸지 몰라 막막한 기분이 들어. 그런데 쓰다 보면 이야기가 쏟아져 나와. 머릿속에 보이기 않는 생각들이 화면 위에 놓이기 시작하지. 그렇게 한 편을 다 완성하면 속이 신기하면서도 뿌듯해. 00 이가 농구를 할 때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이모는 아들을 보면 어때요?"

"이모는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거나 몸이 피곤하다가도 00이가 항상 웃고 있으니까 그 표정을 보면 힘든 일이 다 사라지만 같이 웃게 돼. 그래서 요즘은 00이의 웃음이 나를 살맛나게 해."


어느덧 아이의 질문에 우리는 진지해졌다. 서로 어울려 논 시간은 여러 번이었지만, 이렇게 긴 대화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아이에게 질문했다.


"이모도 궁금한 게 있어. 00이는 농구가 왜 좋아."

"그냥 다 좋아요. 재밌어요."

"골을 넣을 때가 재밌어?"

"아뇨. 골을 넣든 안 넣든 상관없이 재밌어요. 드리블할 때가 좋아요."

"너네 팀이 져도 재밌어?"

"네. 이기는 거랑 지는 거랑 상관없어요. 그냥 농구공 잡고 친구들이랑 노는게 재밌어요. "


어쩐지 그 말이 기억에 남았다. 골을 넣어야만 재밌을 거라는 틀에박힌 생각을 찢는 대답이었다. 내가 골을 넣지 않아도, 꼭 우리 팀이 이기지 않아도 농구자체가 즐거운 아이.


어쩌면 진짜 재미는 아이의 말처럼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일지 모르겠다. 드리블을 하고, 친구와 공을 패스하고, 공을 뺏기기도 하는 과정들도 충분히 재밌는 일들이었다.


왜 우리는 팀이 이겨야만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할까?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쓴 글이 어떤 매체에 실리거나, 수상을 하거나, 책이 되어야만 재밌는 건 아니다.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감정을 만나고, 또 그 글이 누군가를 만나 그 마음호수에 물결을 일으키는 일. 그 과정들이 즐겁기에 지속할 수 있다.


물론 글로 상을 받는다면 상금을 받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장점은 있겠지만 그 일로 인해 없었던 재미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취의 감정이지, 재미는 이미 과정 중에 녹아 있다.



골을 넣지 않아도 재밌다는 아이의 말을 앞으로 지갑에 넣고 다녀야겠다. 재미의 속성, 과정의 즐거움을 알려준 말이었다.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미래를 갈망하며 지금을 괴로워할 때마다 들여다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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