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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Oct 22. 2024

시간이 없어서 일기를 못쓰는 사람을 위한 팁

설거지를 하루라도 안 하면, 음식물 쓰레기가 쌓여서 불쾌한 냄새도 나고, 날파리와 벌레가 꼬인다. 그뿐 아니라, 다음에 쓸 식기도 없다. 그래서 날마다 설거지를 한다.


 일기를 안 쓴다고 삶이 불편하지 않다. 설거지처럼 악취를 풍기지도, 다음날의 일에 타격을 입지도 않는다. 써도 그만이고, 안 써도 그만인 것. 삶의 우선순위에서 쉽게 미룰 수 있는 것이 일기다. 이토록 하찮은 일기를 우리는 왜 초등학교 때부터 쓰라고 강요받을까? 어린 시절 글을 쓸 수 있을 때부터 우리는 방학마다 일기를 써야 했다. 일기장 안에는 왜 꼭 날씨 칸이 있을까? 인터넷도 없던 시절, 날씨를 몰아서 적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두, 세 개만 떠올랐다. 일기를 쓰는 일은 고역이었다. 강제성이 일기를 멀어지게 했다. 강제성이 사라지자 일기에 관심이 생겼다. 작가들은 대부분 일기를 쓴다는 걸 안 후부터였다.


선생님들이 방학마다 일기 숙제를 낸 이유를 자발적으로 써 보니 알겠다. 일기란, 생각을 설거지하는 것. 날마다 쌓여가는 일상과 잡념들을 정리하는 일이다. 우리는 보통 시간기차에 매달려 산다. 내 안에 쌓여가는 것들을 모른 채 다음 날을 맞이한다. 일기를 쓰다 보면 나도 몰랐던 내 감정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하루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이유를 알 수 없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말얼룩도 수세미 대신 연필로 말끔하게 지운다.


하루 동안에는 나를 발견할 수 없지만, 일기를 쓰는 시간에는 제삼자가 되어 나를 바라볼 수 있다. 감정에서 빠져나와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생긴다. 설거지가 끝난 주방을 보듯 새로운 나를 맞이한다. 설거지하듯 일기를 쓴다. 설거지는 미뤄도 일기는 미루지 않는다. 영혼의 정리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느라 일기 쓸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한 일기 쓰기 방법이 있다.


바로

한 단어 일기.


한 줄도 쓸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방법, 한 단어면 충분하다. 한 단어 일기는 3분 안에 일기를 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루에 일어난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을 선별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다.




<망원동> : 장소를 써도 좋다.

나들이에 함께 간 친구의 이름이 두 단어였기에 장소를 택했다. 물론 망원동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상세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한낮의 와인을 마시며 사는 이야기를 하고, 셋이 예쁜 수건 하나씩을 선물했던 것이 떠오른다.




<집주인 딸> :  사람을 쓴다.

지금 사는 아파트에는 부모와 초등학생 자매가 살고 있었다. 집을 보러 갔을 때, 서로 수줍어서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는데, 중학교에 입학하고 한 학기가 지났을 때, 아이가 반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며 흥분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했다. 서로 어디 사냐고 묻다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고 했다. 우리 집이 그 친구가 전에 살던 집이었단다. 전 집주인 딸. 둘은 친하지 않았는데, 그 순간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가까워졌고, 전에 살던 집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다며 우리 집에 오기도 했다.

한 단어만으로도 영화 같은 날의 서사를 세세하게 기억할 수 있다.






< 54캬 > : 새 이름을 짓다.

54캬는 일본의 오사카를 재미있게 표현한 말이다. 몇 년 전 여행 후 만든 책의 이름인데, 아이와 책장에서 그 책을 발견하고 함께  보았다. 책 안에는 아이도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들이 고등어처럼 얼려 있었다.






< 은후네 >

조카들을 만난 날. 올케는 그동안 쌓인 아이들의 이야기를 했다. 초1 친구들은 다 자전거를 타는데, 은채만 씽씽이를 탔단다. 자전거 속도를 씽씽이가 이길 수 없는 법. 아이들이 자기를 기다려 주지 않자 버겁게 따라가서는 이렇게 말했단다.

"왜 이렇게 빨리 가?"

"억울하면 너도 자전거 타."


친구들에게 돌아온 말화살을 듣고, 조카는 그때부터 자전거를 배웠고, 지금은 잘 타게 되었다고 했다. 인생의 절망이 희망으로 이끌기도 한다는 걸 아이들을 통해 알게 된 하루였다.



나는 단어일기를 쓰며 일기가 쓰기 싫던 시간을 건너왔다. 한 단어는 부담이 없었다. 쇼츠 두 개 볼 시간이면 충분하다. 초보일기러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한 줄을 쓰면 안 된다

오로지 한 단어만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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