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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Oct 17. 2024

일기는 쓰고 싶은데, 쓰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팁

" 악필이라서 일기를 못쓰겠어요 "

< 악필이라서 일기를 못 쓰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


눈부신 외모처럼 눈부신 손글씨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모는 이모부의 글씨에 반해 결혼했다고 했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글씨에 반하나? 라고 생각했다. 외모와 성격의 매력을 앞지르는 손글씨라니…. 이모부의 글씨를 보진 못했지만, 며칠 전,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가 의문이 풀렸다.




교보손글씨대회 전시 중



교보 손글씨대회 수상작 전시 중이었다. 세상에는 자기만의 색을 가진 손글씨가 많았다. 어떤 손글씨는 우아한 새가 날아가는 형상이었고, 어떤 손글씨는 몽글몽글 순두부가 끓어오르는 모습이었다. 치즈처럼 쫀득한 글씨도 있었다. 하얀 종이 위에 리듬감 있는 글씨를 보고 있으면 아름다운 풍경화 같았다. 글씨는 그림 같은 울림을 주었다. 예술작품이었다. 얼굴 없이 오로지 글씨로만 만난 사람들. 이모처럼 첫눈에 반할 수 있었다.


나는 살면서 외모를 성형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손글씨는 성형하고 싶었다. 내 글씨가 부끄러웠다. 나이가 들면서 손글씨도 변한다는데, 내 글씨는 초등학교 때 모습, 그대로였다. 기록을 좋아해서 20대부터 다양한 노트에 메모해 왔지만, 자주 펼쳐보진 않았다. 엉망진창인 글씨를 보고 나조차 해석할 수 없는 글자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날마다 일기를 펼쳐 본다. 글씨가 바뀌어서? 내 글씨가 마음에 들어서? 아니다. 내 글씨는 여전히 울퉁불퉁 못생겼는데, 일기장 서랍에 든 것처럼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말끔한 일기를 보며 “저 사람은 글씨가 예쁘니까, 당연히 일기 쓸 맛 나겠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글씨를 잘 못 쓰는(손글씨가 엉망) 사람도 일기를 쓸 수 있다. 시작할 수 있다. 방법 2가지를 말하자면     



내 일기


첫째, 노트 안의 선에 맞춰 쓴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선을 만들어 글줄이 삐뚤어지지 않도록 신경 쓰며 일기를 쓴다. 그러면 글자는 덩어리로 인식된다. 나무(글자) 보다는 숲(문단)이 보이게 된다. 전에는 일기를 쓸 때 선을 맞춰서 쓰지 않았다. 무지 노트에 가운데에 썼다가, 끝에도 썼다가 했다. 마치 나의 글씨는 프라이팬 속 대하가 날뛰는 모습에 닮아 있었다. 그 당시의 기록은 떠오르는 생각을 담는 일에 충실했다. 사실 그렇게 써도 무관하다. 하지만, 계속 펼쳐보고 싶은 일기를 쓰고 싶다면 선을 맞추어 쓰는 것이 좋다. 흐트러진 수건보다 각지게 접은 수건을 보면 기분이 좋은 것과 같다.     





내 일기


둘째, 마음에 드는 스티커를 이용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라는 속담처럼 손글씨는 안 예뻐도(이) 그를 보완할 예쁜 스티커(잇몸)가 있다. 그동안 못생긴 손글씨 탓만 하며 살았다. 예쁜 스티커와 마스킹 테이프를 만난 후로는 생각이 달라졌다. 한 페이지의 색감을 정하고, 그와 어울리는 스티커를 붙이면 꼭 글씨가 예쁘지 않아도 이미지가 더해져서 일기의 완성도가 높아졌다. 글을 쓸 때보다 더 즐겁게 일기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을 오랜 시간에 거쳐 찾았다. 작은 변화를 주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일기에 감탄했다. 나는 여전히 ‘글씨도 별론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쑥스러웠지만, 사람들은 글보다는 꾸준히 일기를 쓰는 태도와 일기의 컨셉을 보았다. 일기도 사람과 같았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장단점이 있다. 단점만 생각하다가 매몰되는 삶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점을 찾아 나의 색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있다. 일기도 다양한 방식이 존재했다. 누군가는 예쁜 손글씨로 장점을 드러내고, 누군가는 이미지를 중첩해서 와글와글한 일기를 쓴다. 또 누군가는 한 줄 일기로 미니멀함을 더한다.



꼭 글씨를 잘 써야지만 일기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기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첫발을 디딜 수 있다. 쓰다 보면 다음의 세계가 보이고, 점점 업데이트 된다.

나 역시 기록이 좋아서 그저 쓰기만 한 시간이 18년. 나만의 방법을 찾은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나 같은 사람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위의 두 가지의 팁을 전한다.      

글씨를 못 써도 일기 쓸 수 있다.




과거의 일기와 현재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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