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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Oct 21. 2024

귀찮아서 여행기록을 안 하는 사람을 위한 팁

여행 기록

여행만이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통째로 즐길 수 있다. 비행기표를 끊고, 계획할 때 이미 설렘을 대출한다. 비행기에 탑승해서는 상상이 현실이 되면서 벅차오른다.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낯설고 이색적인 경험이 시작되고,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가 된다. 그 감각들을 잊지 못해 떠나고, 돌아오고를 반복한다. 일기를 쓰지 않던 시기에도 여행기록은 꼭 했다. 오로라같은 찰라의 기분을 반복 재생하고 싶었다. 


여행이 끝나면 맥주 거품처럼 몽글몽글한 감정도 사그라든다. 맥주 거품이 빠졌다고, 맥주가 없는 것은 아니기에, 그때부터 맥주맛을 음미하듯 여행의 순간을 음미해야 한다. 여행 중에는 모든 일이 생방송처럼 흘러서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떤 걸 의미 있게 느꼈는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들뜬 시간이 지나고 기록을 통해 시간을 뒤돌아 볼 때, 추억은 온전히 내 것이 된다. 기록은 시간차를 두고 사색할 때 큰 힘을 발휘한다. 그 과정을 맛본 사람은 여행기록을 지속하지만, 귀찮아서 여행기록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첫 발을 딛기 어렵다. 그래서 손쉽게 하는 여행기록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세 가지의 방법으로 요약할 수 있다. 


1. 여행지에서 받은 음식점, 카페 명함, 전시 리플릿, 박물관 티켓, 과자 봉지, 상품 택 등 종이 조각들을 모은다. (지퍼백 하나를 가져가서 분별하지 않고, 다 넣어 둔다.)


2. 여행이 끝난 뒤, 그것들을 펼쳐 놓고 기억에 남는 이미지를 고른다. (옷의 택이 될 수도 있고, 카페의 설탕일 수 있고, 서점 직원에게 받은 책갈피일 수도 있다.)


3. 표지가 될 만한 종이에 선별된 오브제들을  붙인다.


모으고, 고르고, 붙이면 된다. (모. 고. 붙) 이 방법을 쓰면 따로 긴 글을 쓰지 않고도 쉽게 여행을 기록할 수 있다. 

우리가 책보다 영상을 즐겨 보는 이유는 직관적이어서 에너지가 적게 들기 때문이다. 여행기록이 귀찮아서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의지를 최소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직접 만든 여행 다트.

마쓰야마의 면세점에서 구입한 과자 상자( I - YOKAN )를 책 표지로 쓰기도 했고, 오사카에서 공짜로 나눠준 노트홍보책자를 이용했다. 마땅한 표지가 없을 때에는 마음에 드는 엽서를 색지에 붙여 노트를 만들었다. 





여행지에선 산 손수건 택을 보기만 해도 장소와 이미지가 떠올랐다. 모리스패턴의 손수건이 예뻐서 어떤 걸 살지 고민하다가 발을 동동 굴렀다. 결국 결정할 수 없어서 민트, 핑크, 노랑 세 개의 손수건을 다 샀다. 한국으로 와서 엄마와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오사카 루쿠아 백화점 안의 <시로>라는 화장품 매장에 들러, 향수를 시향을 했다. 화이트 티와 얼그레이 향이 마음에 들었다. 평소라면 시향 후에 버렸을 종이이지만 여행기록을 해야 하기에 신경 써서 챙겨 왔다. 츠타야 서점에서는 친절한 점원이 책갈피를 세 장이나 챙겨 주었다. 사소한 순간의 작은 종이 몇 장이었지만, 큰 마음을 받아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8살 조카와 함께 간 후쿠오카 여행에서 조카가 접어 준 새 모양의 색종이도 붙여 놓았다. 모은 종이들이 많아서 탄탄한 사탕봉지를 잘라서 파우치를 만들어서 박물관 티켓과 음식점 메뉴들을 넣어 놓았다. fff(유후커피)는 볼 때마다 식은땀이 난다. 아름자운 자연을 자랑하는 유후인을 구경하는데, 배에서 신호가 오는 바람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긴박하게 화장실을 찾아 들어간 곳이 fff카페였다. 나의 사정은 모른 채 너무 친절하신 사장님의 긴 설명을 등지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평온을 찾고 맛본 커피는 천상의 맛이었다. 우연히 간 곳이었지만, 커피가 맛있던 곳. 다음에 다시 또 가고 싶은 곳이기에 명함을 오려 붙여 놓았다. 



종이 조각은 작지만 하나하나, 우주 같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보면 저절로 여행의 순간이 떠오른다. 스크랩북 은 한 권이 동영상이 된다. 

붙이는 것도 힘겹다면 비닐백 안에 이미지를 넣어두기만 해도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핑크, 레드 등 같은 톤의 종이들을 모으면 더 아름답다. 






위의 마쓰야마의 여행노트를 보면 가챠에 빠져서 여행 내내 가챠만 뽑았던 기억이 난다. 수 백개의 가챠 중에서 나는 위트 있는 가챠(스시반지, 술 마시는 자유의 여신상 등)를 좋아했고, 남편은 건담 시리즈, 아이는 동물 가챠만 뽑았다. 가족으로 함께 10년 넘게 살았지만,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몰랐는데, 가챠샵을 통해 한 번에 알게 되었다. 여행의 서로를 관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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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추억의 상자를 여는 열쇠다. 



아무리 아름답고 풍요로운 여행을 했어도 기록하지 않으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여행은 자주 하지만 기록하지 않는다면 오늘 소개한 방법(모. 고. 붙)을 해 보자. 그러면 갔던 나라를 8번, 12번 반복해서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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