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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Oct 16. 2024

가을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기록

나뭇잎 일기

가을의 풍경은 백화점 같았다. 볼 것이 많았다. 색종이처럼 다양한 나뭇잎의 색도 보고, 담벼락의 넝쿨도 봐야 했고 맛있게 구워지는 산도 보아야 했다. 집에서 역으로 걸어가면 15분이 걸렸다. 하지만 7살 아이와 함께 가면 한 시간이 걸렸다. 아이의 보폭의 문제가 아니라, 스티커 같은 시선의 문제였다.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 하나하나를 다 관찰했다. 초코송이 과자각을 보며


"맛있겠다. 이거 먹고 싶어."


입맛을 다셨다. 아이에게 쓰레기는 광고판이었다. 아직 쓰레기에 대한 인식이 없는 아이의 해석이 귀여웠다. 또 조금 걷다가 멈춰 서서 담벼락에 포스트잇처럼 붙어 있는 넝쿨을 한 참 바라보았다. 그 안의 뚫린 구멍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지었다. 나뭇잎은 책이었고, 구멍을 만든 벌레는 이름 모를 작가가 되었다. 걸어가며 읽는 동화책이었다. 아이는 나뭇잎을 한 장, 한 장 보며

 

"자동차가 지나가네. 어디로 갈까?"

다음 나뭇잎으로 자리를 옮겨 말을 이어갔다.

"새가 그 자동차에 타나 봐."

그저 구멍으로 보이는 흔적을 아이의 눈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구멍은 이야기가 되었다. 10년 전의 기억이 생생할 정도록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이 왔다. 하늘은 깊었고, 낙엽은 다이빙을 했다. 올여름은 10월 넘어서까지 뜨거웠기에 가을이 도망칠까 초조했다. 가을의 스토커가 되자고 생각했다. 청춘을 지난 낙엽의 색도 예뻐지만, 나뭇잎의 구멍들이 눈에 띄었다. 시간의 소멸과 낡음을 붙잡고 싶어 구멍 있는 낙엽들을 일기장에 그리기 시작했다.


낙엽 드로잉



어떤 낙엽의 구멍은 울상 짓는 사람의 표정이었고, 어떤 구멍은 마음을 전하는 하트 모양이었다. 벌써 너덜너덜해진 낙엽도 있었다.

가을이 지나면 낙엽의 흔적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일기장 속 그림은 남을 것이다. 가을과의 연애를 마치고 겨울을 만나도 가을을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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