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낙엽일기

by 하하연

가을의 풍경은 백화점 같았습니다. 볼 것이 많았죠. 색종이처럼 다양한 나뭇잎의 색도 보고, 담벼락의 넝쿨도 보고, 갈색으로 맛있게 구워지는 산도 보아야 했습니다. 집에서 역으로 혼자 걸어가면 15분이 걸리지만 7살 아이와 함께 가면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이의 보폭의 문제가 아니라, 스티커 같은 시선의 문제였습니다. 아이는 어른이라면 외면하는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 하나하나를 다 관찰했습니다. 초코송이 과자각을 보며


"맛있겠다. 이거 먹고 싶어."


입맛을 다셨습니다. 아이에게 쓰레기는 광고판이었습니다. 아직 쓰레기에 대한 인식이 없는 아이의 해석이 귀여웠습니다. 조금 걷다가 또 멈춰 서서 담벼락에 포스트잇처럼 붙어 있는 넝쿨을 한 참 바라보았습니다. 잎에 뚫린 구멍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지었습니다. 나뭇잎은 책이 되었고, 구멍을 만든 벌레는 이름 모를 작가가 되었습니다. 벽의 넝쿨은 걸어가며 읽는 동화책이었습니다. 아이는 나뭇잎을 한 장, 한 장 보며


"자동차가 지나가네. 어디로 갈까?" 말하고 다음 나뭇잎을 보고는

"새가 그 자동차에 타나 봐."라고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제가 보았을 때에는 그저 구멍으로 보이는 흔적이었는데 아이의 눈으로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구멍은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러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이 왔습니다. 하늘은 파란 수영장처럼 깊었고, 낙엽은 땅으로 다이빙을 했습니다. 올여름은 10월 넘어서까지 뜨거웠기에 가을이 도망칠까 초조했습니다. 짧은 시간이 아쉬워서 가을의 스토커가 되자고 생각했습니다. 청춘을 지난 낙엽의 색도 예뻐지만, 나뭇잎의 구멍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시간의 소멸과 낡음을 붙잡고 싶어 구멍 있는 낙엽들을 일기장에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낙엽 드로잉



어떤 낙엽의 구멍은 울상 짓는 사람의 표정이었고, 어떤 구멍은 마음을 전하는 하트 모양이었습니다. 벌써 너덜너덜해진 낙엽은 뼈만 남은 듯했습니다. 가을이 지나면 낙엽의 흔적도 사라지겠지요. 하지만 일기장 속 그림은 남을 것입니다. 가을과의 연애를 마치고 겨울을 만나도 가을을 잊지 말아야지 다짐합니다.



* 기록해 볼까요? 낙엽 구멍 드로잉

거리에 떨어진 낙엽을 들여다보세요. 구멍이 여러분에게 어떤 모양으로 보이나요?

낙엽의 마음을 읽었다면 그 모양을 그려봅니다.




keyword
이전 11화행복 공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