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지나가는 저녁이면 기억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바구니에 옮겨 담는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그 속을 들여다본다. 이런 고기가 있었네. 미역도 있어. 조개까지? 심지어 페트병 쓰레기도 있다. 여기서 그물이란 기록. 그물에 담긴 하루를 보다 보면 어떤 것들이 내게 유의미했는지 알 수 있다.
하루의 끝, 그날의 기분에 따라 가장 근사한 기억물고기를 골랐다. 어느 날, 한 종류의 물고기만 분류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물고기만 골라놓은 기록을 (이달의 행복버튼)하기로 했다.
몇 가지 소개해보면
1. 매미의 소리가 줄어들고 그 소리를 풀벌레와 뻐꾸기가 채웠다. 요란하지 않은 잔잔한 소리가 편안하다.
2. 동네카페 중 돌배책방에서 착즙포도주스를 먹었다. 그때그때 바뀌는 제철주스를 맛보는 즐거움이 크다.
3. 형광핑크의 맨드라미를 보며 뇌 같기도 하고, 알탕 같기도 했다. 상상은 즐거워!
4. 후쿠오카 공항에서 민트색의 티파니향수종이가 너무 예뻐서 소리를 질렀다. 이토록 가벼운 행복이라니!!
5. 장 보고 오는 길, 불타는 노을에 여기저기 셔터 소리가 들렸다. 횡단보도에 서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사진가가 되었다. 아름다움은 모두의 걸음을 붙잡는다
6. 더워도 너무 더웠던 여름. 9월에도 오지 않던 가을이 하루 만에 입국했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은 몇백만 원의 가치를 지닌 듯 희소했다.
7. 사고 싶은 책이 있어 교보문고에 들렀는데 실제로 보니 그 책이 별로 사고 싶지 않았다. 대신 외국서적을 할인하는 이벤트. 뜻밖의 책을 만났다.
8. 가을을 만끽하고 싶어 낙엽들을 들여다보다가 낙엽의 구멍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9. 저녁을 먹고 나오는 길, 편의점에서 아메리카노 원 플러스 원 행사를 했다. 남편과 한 잔씩. 짠♡
10. 컨디션 난조로 몸 가눌 힘이 없었는데 아이가 내 머리를 감겨줬다. 물이 튕겨서 깔깔깔, 샴푸가 시원해서 깔깔깔.
기분 나쁜 일과 말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생각이 난다. 아니, 떼어내려고 해도 졸졸졸 따라다닌다. 하지만 즐겁고, 행복한 순간은 바람처럼 빠르게 스쳐간다. 다시 떠올리려고 노력해야 가깟으로 생각난다. 기록은 증발하는 행복을 내 곁에 두었다.
기록모임에서 한 분이 힘들 때마다 글을 썼는데 그 글은 다시 들춰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다시 보니 다시, 힘들다고 했다. 그런 글들 역시 그 역할이 있는 법. 쌓인 감정을 떨쳐버릴 수 있다.
언제 만나도 기분 좋은 사람이 있듯,
언제 봐도 기분 좋은 기록이 있다.
나만의 행복버튼찾기는 한 달 동안 쉽게 완주할 수 있었다. 더 지속하고 싶은 기록이다. 모든 기록이 다 내게 맞는 것은 아니다. 잘 맞는 기록은 지속할 수 있지만 맞지 않는 기록은 금방 멈추게 된다. 기록도 적성에 맞는 것이 있다.
혹시 삶이 밋밋하고, 무료하게 느껴진다면
하루에 하나의 행복을 적어보자. 그러다보면 어느샌가 밋밋한 삶에 자신만의 무늬가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