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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Sep 13. 2022

누구에게나 '띠용'은 있다

띠용수집

    

<저마다 다른 띠용, 저마다 다른 우리 (직접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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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색종이 뒤의 검은 색종이 같은 밤이었다.



K와 연남동에서 홍대로 이어지는 길을 걷고 있었다. 멀리서 보았을 때 커다란 비닐봉지가 움직이는 듯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원고지 같은 보도블록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했다. 버스처럼 스쳐 갈 풍경이었다. 같이 있던 K는 아저씨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괜찮으세요? 집에 가셔야죠. 여기서 누워서 자면 안 돼요.”     



아저씨는 문어처럼 흐물거린 채,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K는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취객이 길거리에 있다고 안전하게 귀가시켜 주기를 바랐다. 도로 위의 우리의 위치를 알 수 없어서 주변의 건물 이름을 말했다. 한참의 전화 통화 후, 경찰이 출동하겠다는 말을 듣고서야 안도하며 가던 길을 갔다.



그 일이 있고, 몇 달 후의 만남이었다. K는 인테리어 회사 대표로, 그동안 필라테스 공간을 작업했다고 했다. 다양한 분야의 기술전문가들과 소통을 하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고, 뚝딱 만들어진 것 같은 공간에는 많은 사람의 노력이 타일처럼 붙어 있었다며 공사 과정 중에 고단했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화장실 공사를 할 때, 천장의 수많은 선과 환기구가 거미줄처럼 엮여 있거든. 그 공간도 깔끔하게 처리해야 하는데 같이 작업하시는 분이 왜 안 보이는 곳까지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이냐고 답답하다는 거야. 나는 보이냐 안 보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맡은 일이면 누가 보든 안 보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K는 매사 열정적이었다. 타인의 잣대보다는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정성을 다했다. 그것이 그의 기본값이었다. 과거에 일했던 병원이든, 길거리 위에 쓰러진 취객을 보든, 인테리어 공사현장이든 요양원이든 한결같았다. 시간이 흘러 K가 글로벌 기업에 입사를 했을 때였다. 집단 안에서 일어나는 불합리한 일들은 개선되어야 한다고 했다. 상사의 권위적인 지시나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말투, 오해로 인한 잘못, 가중된 업무에 대해 표현했단다. 정중하고 절제된 단어를 선택해 말을 한다거나 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그러면 감정이 격해지거나 갈등이 깊어질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예의를 갖춘 말로 본인의 의견이 상대에게 전해졌고, 설득되면 문제가 개선되고, 상대가 함부로 대하는 것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내가 그동안 해온 회사생활은 불합리한 것들이 잘 개선되지 않았다. 바른말을 하는 사람들은 종종 미운털이 박히기도 했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올바른 방향으로 수정되는 사례를 잘 보지 못했다. 내게 회사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K는 회사에서의 갈등이나 문제를 피하지 않았다. 정면으로 부딪치고 신념을 가지고 소통했다. 유연하면서 단단했다. 정중한 말과 부드러운 표정으로 겉은 복숭아처럼 부드러웠지만 내면에는 불도저 한 대를 품고 돌진하는 것처럼 힘이 있었다. K에게 물었다.


“회사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생기는 거예요?”

생각과 의견을 주춤하지 않고 시원하게 말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용기를 내야지 해서 나오는 게 아니고 그냥 저절로 나오는 거야.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띠용’ 같은 것. 너도 나와 같이 거리를 걸을 때, 직관적으로 아름다운 순간들을 잘 낚아채잖아. 대화 중에도 빛나는 말들을 직관적으로 찾아내고……. 그런 것들이 해야지 해서 하는 게 아니고 저절로 나오잖아?”

“그렇죠.”

“그거랑 같은 거야.”     



상자를 열면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인형 같은 것. ‘띠용’이라는 표현을 들으니 이해되었다. 누구에게나 ‘띠용’은 있다. 노력하지 않아도 튀어나오는 생각, 태도, 삶의 방식 말이다. 나 역시도 오랜 시간 동안 좋아하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그 시간이 쌓여 이제는 어떤 노력을 하지 않고도 반짝이는 순간을 잘 찾는다. 하나의 감각처럼 저절로 움직인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구석에서도 찾고, 저 멀리 있는 간판 안에서도 울림 있는 글귀를 찾아낸다. 친구들은 종종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보지 못하는 것을 너는 어떻게 그렇게 잘 봐? 눈이 보배야.”     


K에겐 당연한 행동이 내겐 용기로 느끼며 감탄했는데, 친구들도 내게 비슷한 말을 했었다. 돌이켜 보니 K에게만 있는 줄 알았던 ‘띠용’이 내게도 있었다. 누구에게나 나도 모르게 좋아서 하는 행동과 생각이 있다.

이 일이 있은 후, 사람들의 띠용이 궁금해 수집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너무 힘겨운 나는, 새벽 기상을 날마다 하며, 황금 같은 시간을 만드는 지인에게 물었다.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 너무 대단해요. 그걸 어떻게 하는 거예요?"

"사실. 새벽형 인간이라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농사일을 하는 부모님을 돕느라, 새벽에 자주 일어났는데... 그게 습관이 된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힘들면 지속하지 못했을 텐데, 새벽에 일어나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고요."


무릎을 쳤다. 새벽 기상이 노력인 사람들도 있지만, 기질적으로 밤잠이 많고, 아침잠이 없어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또 다른 예로, 미아 책방님은 회사에서 점심시간이 되면 가장 먼저 이 말을 한다고 했다. 12시가 땡 하면,

"점심 먹으러 가시죠."

본인이 배꼽시계가 정확히 울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그 말을 한다고 했다. 누군가는 그 말을 꺼내 주길 바라면서 눈치 보는 사람도 있을 텐데, 한 사람이 그 역할을 맡아한다니...

누군가의 띠용은 여러 사람에게 선물이 되기도 했다.



띠용의 모습은 다양했다. 누군가는 다정함이, 누군가는 배려가, 누군가는 유머가 삶 속에서 저절로 튀어나왔다. 그 모습이 쌓여 삶의 태도가 된다. 유머 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도 유머를 잃지 않고, 쭉 유머 있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본인의 모습을 누가 발견해 주기는 쉽지만 스스로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시간을 들여 생각해보자. 무의식에 나오는 나의 행동들은 무엇일까?




누구에게나 내면 속 상자에 저절로 튀어나오는 ‘띠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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