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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Sep 14. 2022

다정하고 귀여운 사람들

귀여움 수집



1

조카와 그림을 그렸다. 스케치북에 과일 병원이라고 쓴 글이 재밌다고 생각해서 함께 과일을 그리자고 했다. 민재는 형광 연두색 펜을 들고 동그란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은색의 선은 비가 오듯 죽죽죽 그리더니,


"수박"이라고 했다.

"다음에는 어떤 과일 그릴 거야?" 묻자

"멜롱"이라고 답했다.

방금 전 그렸던 대로 그대로 형광 연두 팬을 들어 동글동글 그리더니 또 검은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멜론이야? 수박이지?"

"아니야. 멜롱이야."

"이게?"


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검은색 펜으로 가로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수박에 가로선을 그으면 멜론이 되었다. 미니멀 회화의 한 장면을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본질을 꿰뚫은 아이의 해석을 보며 의심하던 내가 머쓱했다.





2   

제주도의 한 식당 안.

보글보글 해물탕이 끓고 있었다. 냄비 안에는 양손으로 브이를 하는 꽃게와 자개 빛을 품고 있는 전복, 노을처럼 변해가는 새우 두 마리가 있었다. 그 안의 새우를 보며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아이가 아빠에게 말했다.

“이거 새우깡이네.”

귀여운 생각과 깜찍한 말에 새우를 쳐다보았다. 해물탕보다는 새우깡을 더 많이 접했을 아이. 어쩌면 태어나 해물탕을 처음 접하는 자리일지도 몰랐다. 늘 보던 과자 봉지에 그려진 새우가 눈앞에 나타나 보글보글 들썩이며 어깨춤을 주고 있다니....

어디를 가든 아이들의 대화에 관심을 기울인다. 마치 특종을 기다리는 기자가 된다. 기발한 말들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3

비행기 안, 이런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제주도로 여행을 가는 길. 연륜이 있어 보이는 한 승무원이 착륙 전, 뒤에서부터 걸어왔다. 기울어진 좌석을 세우고, 안전벨트를 잘 착용했는지 하나하나 살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있는 좌석에서는 멈추어 섰다.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한 명 한 명 인사를 했다.

“안녕”

“안녕”

“안녕”열 번이 넘는 인사였다. 흔들리는 기내 안의 복도를 가로지르며 해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이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비행이었을 텐데, 비행 막바지에 건넨 따뜻한 인사는 아이는 물론 어른의 마음까지 녹였다. 사무적인 공간 안이었기에 그의 인사가 더 다정했다. 그 후에도 비행기에 타면 계속 생각나는 장면이었다.     




4

아이의 학교 선생님도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포근했다. 핑크색 눈이 흩날리는 봄, 집에 돌아온 아이가 신나서 말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운동장에 나가서 뛰어놀았어.”

“그래? 체육시간이었어?”

“아니.”

“그럼 왜?”

“선생님이 내일 비 소식이 있다고, 벚꽃잎이 떨어지기 전에 마음껏 보라고 운동장에 나갔어.”     


예보를 모르고 있었는데, 다음날은 정말 비가 내렸다. 11살의 봄을 간직해주려고 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벚꽃처럼 예뻤다. 학창 시절에 받은 누군가의 사랑은 잊히지 않고 평생 꽃을 피운다. 그날이 아이에게는 그런 순간이었다. 올라간 입고리와 격양된 목소리를 들으며 알 수 있었다.     



5

처음 본 사람에게도 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배려가 몸에 배어 있는 사람들은 마음의 안테나가 계속 켜져 있었다. 에디터 강의를 듣는 날, 수업 중간에 학생이 들어왔다. 허리를 숙이며 들어와 빈자리에 앉았고, 사람들은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잠깐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수업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기에,‘무슨 일을 하다가 늦게 온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는데, 한 학생이 자기 옆, 책상에 있던 프린트를 늦게 온 사람에게 건네주었다. 그가 비어 있는 책상에 앉아서 교재가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서로가 아는 사이가 아님에도 챙겨주던 그 모습은, 수업이 끝나고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런 사람들은 무지개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연히 만나게 되는 예쁜 사람들이었다.      




6

화담숲에는 거울 같은 호수를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있다. 호수 바로 앞의 자리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우리 가족은 어느 곳에 자리가 날까 두리번거렸다. 그때, 한 부부가 다가와 우리는 다 먹었으니, 이곳에 앉으라고 자리를 내어주었다. 커다란 나무가 드리워져 시원한 테이블이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앉았다. 돌아서서 가야 하나 했는데, 행운이었다. 투명한 바람을 맞으며, 눈앞에 펼쳐진 초록 범벅의 산을 바라보았다. 눈으로 샐러드를 먹는 듯 싱그러웠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건 옆 테이블 사람이었다. 그곳은 한옥 처마의 그림자가 반만 드리워져 있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그 자리에 먼저 앉았는데, 일부러 햇빛이 있는 곳에 앉았다. 나중에 오는 사람을 그늘에 앉게 해 주려는 배려였다. 여름 한낮, 느닷없이 펼쳐진 시원한 마음이었다. 그 후 다른 일행이 오자, 서로 햇빛에 앉겠다며 다투었다. 다정한 싸움이었다.      



우리의 삶의 여정에는

인연이 되어 우리 곁에 쭉 함께하는 사람도 있고,

잠깐 함께 하다가 이별하는 사람들이 있고,

날마다 스치는 사람들이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말이 .


스치는 사람들도 어떻게든 삶에 영향을 주기 때문 이런 말이 생긴건 아닐까?

비행기에서 만난 승무원

식당 옆에 앉았던 꼬마

화담 숲에서 만난 사람 등


그저 스치는 사람들이었지만

따뜻한 풍경을 남겨놓고 갔다.


무관심하면 아무 일도 일도 아닌 것이 되지만,  관심을 기울이면 그림책 같은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 마음의 연못에 작은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들을 만난다.



해가 뜨고, 해가 지듯 우리 곁에 다정한 사람과 귀여운 장면도 뜨고 진다.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으면 그날의 황홀한 노을을 만날 수 없듯, 내가 스치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정있게 바라본다.

그리고 가끔 그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러면 나도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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