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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Sep 16. 2022

평생 받은 손편지는 얼마나 될까?

<다낭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받은 세뱃돈과 손편지 (직접 찍은 사진)>






Dear Hayeon!

Thank you for choosing to stay with us.

Hope you have had a wonderful time here in Da Nang.

Have a safe flight back and wish you all the best in ahead New year.

Best regard!     




베트남 다낭의 숙소에서 체크 아웃을 하려는데, 직원이 우리에게 엽서와 빨강 봉투를 주었다. 엽서 안에는 연필로 그은 선 위에 정성스러운 글이 적혀 있었다. 글줄이 삐뚤빼뚤하지 않게 노력한 모습이 보였다. 빨강 봉투 안에는 베트남 돈이 들어있었다. 베트남에서도 새해에 세뱃돈을 주는 문화가 있다고 했다. (타지에서 이 나이에 세뱃돈을 받을 줄이야….) 여행의 첫날이 아닌, 마지막 날이었기에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수많은 여행지 중 왜 유독 다낭의 숙소가 기억에 날까? 생각해보니 편지 덕분이었다. 편지 한 통에는 많은 마음이 들어있다. 편지지를 고르고, 어떤 말을 할까 고민하고, 한 글자씩 종이에 써 내려가는 시간이 눈에 보였다. 그 마음을 알아서 여행지에서 받은 손편지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일상에서, 대화로 하는 말에는 깊은 마음을 담기 어렵다.



우물 속에 있는 물을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듯, 편지는 속마음을 끌어낸다. 하얀 종이 위에 연필을 들고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평소 눈을 마주치며 하기 힘들었던 마음이 맥주 거품처럼 줄줄 흘러나왔다. 편지가 주는 마법이었다. 이런 손편지의 소중함을 아는 친구가 있었다. Y와는 2016년부터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동안 쌓인 편지를 세 보니, 약 50통이 넘었다. 우리는 만나서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했다. 서로 좋아하는 책을 이야기하고, 예쁜 엽서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상견니>라는 영화 속 주인공에 관해 이야기했다. 일상적인 대화는 구름처럼 몽실거렸다. 하지만 서로 건넨 손편지에는 묵직한 말들이 가득했다. 눈을 보며 하기 쑥스러운 말들이 분리되어 종이 위에 놓여 있었다.     





네가 있어 늘 위로받았던 지난해였어. 올해는 너의 모든 일에 나 또한, 위로되어주길 바라는 맘을 담았어. ‘좋은 사람’으로 곁을 내어주자. / 2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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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거리에 있는 네가 단지 한 시간 더 멀어지는 건데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가 너무 고맙고 슬퍼. 며칠에 한 번은 청소하듯 마음을 쓸고 닦는 일을 너와 만나 해왔는데 서로가 노력해야 하는 것도 우리의 달라진 상황 중에 하나겠지? 매일 나도 마음을 다잡고 있어. / 2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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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겠지?

네가 눈이 쌓인 날 만나자면 운전 조심하라고 꼭 얘기해줬잖아. 눈을 피해 걸으면서 조심스럽게 운전하고 가서 따뜻한 곳을 찾아 걷다가 옆을 보면 서로의 눈, 길을 살펴주는 게 참 좋았어. / 20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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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랑 어떤 밧줄로 연결된 기분이 들어. 운명의 빨간 실 따위가 아니라 두꺼운 밧줄로 꼭꼭 묶여있는 그런 기분 있잖아? / 2020.07     



만났을 때는 잘 표현하지 않아 모르던 마음이 편지로 전해졌다. Y와 많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가장 잊지 못할 편지를 꼽으라면 2016년 12월의 편지였다. 그녀는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었다. 오른손에 깁스하고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날들이었다. 좋은 날만 보내던 우리에게 처음 마주한 아픔이었다. 기쁨은 내 것이 아니어도 함께 느낄 수 있었는데, 그녀의 몸속 고통은 내가 느낄 수 없었다. Y의 눈을 마주하면서 그의 통증을 느낄 수 없어 안절부절못했다. 그런 내게 Y는 웃음으로 괜찮다고 말했다. 퇴원 후 내 생일 즈음에 그녀를 다시 만났다. 늘 그렇듯 내게 엽서 한 장을 건넸다. 그 안에는 자음과 모음이 이리저리 기울어져 있었다. 왼손으로 쓴 편지라고 했다.      



내 첫 왼손 편지는 너야~^^ / 2016. 12 살아 있는 Y     



병원 침대에서도 편지를 쓰다니…. 그녀에게 손편지는 그런 것이었다. 어떤 편지들은 마음의 홍수를 일으켰다. Y의 편지 속 작고 앙증맞은 글을 보다가 이리저리 쓰러진 글자를 보려니, 편지를 쓰는 동안의 애씀이 느껴졌다. 오른손잡이의 왼손 글씨.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글과 글을 쓰는 사람의 장면이 동시에 그려지는 편지는 처음이었다.      

이렇게 펼쳐보기 힘든 편지들이 있다. Y의 편지가 그랬고, 결혼 후 엄마가 쓴 편지가 그랬다. 어릴 때, 엄마로부터 사랑한다는 글과 반찬 어디에 있다는 메모는 자주 받아 왔지만, 정식으로 봉투에 담긴 장문의 편지는 처음이었다.





결혼식 전날, 집을 떠나는 내게 엄마는 편지를 건넸다. 겉면에 적힌 <사랑하는 딸에게>라는 일곱 글자만 봤을 뿐인데 벌써 눈물이 고였다. 넘치는 감정을 꾹꾹 눌러가면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동안 살면서 엄마와 함께한 무수한 밤이 스쳐 갔다. 우리의 희로애락이 그 안에 있었다. 어려움 속에도 우리 곁을 지켜 준 엄마. 한없이 받기만 한 것 같은데, 오히려 나에게 서운한 일을 남겨 놓고 가라니. 그 한 문장 속에 무수한 시간의 층이 보였다.




‘ 엄마, 아빠에게 서운했던 일 있으면 다 두고 가렴. ’     




눈물을 가까스로 참으며 읽었는데, 마지막 말에 소나기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어쩌자고 결혼식 전날 이렇게 나를 울리는지….     




삶에서 만난 편지들은 진했다. 사랑 없이는 쓸 수 없는 것이 편지이지 않을까?

그 동안 편지 속  문장은 나에게 무수한 감정을 묻힌 채, 종이 위에 담담히 서 있었다. 언어로는 느껴보지 못한 모래 알갱이 같은 감정이 글자를 타고 간지럽혔다.



어쩌면 나를 키운 건 손편지 속 말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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