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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Sep 18. 2022

우리 집에는 신구 아저씨가 산다.

가사 분담 조정



결혼 후, 나는 가계부 대신 가사노동시간을 적었다.


설거지 6시간

방 청소 3시간

빨래 4시간 등

(일주일 기준)


그것을 적어 냉장고에 붙여 놓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연애 때, 남편의 자취방에 갔을 때에도 늘 지저분했다. 그 방의 모습이 결혼 후,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미처 알지 못했다. 당시에는 회사생활이 바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결혼 후, 남편은 집 안 일에 참여하지 않았다. 쓰레기 버리기 하나 할 뿐, 청소, 빨래, 설거지, 정리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결혼 후 가사 일로 많이 싸웠지만, 우리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본인은 회사 일을 하는데, 가사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했다.


결혼 전, 어머님이 집안일에 남편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게 키웠듯,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엄마 역시, 결혼 후 살림을 계속할 텐데 뭐하려 미리 하냐며, 설거지 한 번을 시킨 적이 없었다. 그게 더 집안일을 고되게 만들었다. 안하다가 하려니 계속 안하고 싶었고 조금만 해도 힘들었다.


우린 서로 그렇게 자라왔다.


공주와 왕자가 만났는데, 신하는 없었다.


결혼 후, 누군가는 집안일을 해야 하는데, 둘 다 할 마음이 없었다. 남편이 안 하니 늘 내가 해야 했다. 합동해서 하면 할 만 하겠는데, 혼자하려니, 날마다 억울했고, 날마다 화가났다. 그래서 싸웠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제자리였다. 이성보다는 감성적인 말이 앞섰고, 단단한 남편의 사고도 깨지지 않았다.


그래서 쓴 방법이 노동시간을 시각화해서 숫자를 붙이는 것이었다. 억울함으로 날마다 기록한 노동의 숫자를 남편은 영수증 보듯 그냥 넘겼다. 어떤 날은 커다란 스케치북에 감정을 쏟아내 편지를 쓰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날카로운 말은 다음 날, 날카로운 말로 다시 돌아왔다. 나 역시 집 안 일을 좋아하지 않기에 억지로, 억지로 해 나갔다. 혼자 하는 집안일은 원망의 마음이 되어, 상대에게 친절할 수가 없었다. 그 시기의 우리는 계속 아슬아슬했다.


결혼 5년 차가 되었을 즈음. 안 되겠다 싶어. 남편의 빨래를 남편의 몫으로 정했다. 그는 마지못해, 억지로 받아들였고, 일주일에 한 번 자신의 빨래를 했다. 하면서도 단 한 번도 그냥 한 적은 없었다.


"이걸 내가 하네."

"누가 해줬으면..."


할 때마다 구시렁거렸다. 그럴 때마다 그 많은 가사 일 중 단 하나 하면서도 저렇게 생색을 내나 싶어 좋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집안일을 잘하지 않는 남편은 육아에도 자발적 참여가 적었다. 회사일로 바쁜 남편을 이해하다가도 시간이 생기면 육아보다는 자신의 운동을 먼저 챙기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강도의 육아를 혼자 담당할 때면, 저출산의 이유는 남편의 가사 참여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살림과 육아를 홀로 하던 시간은 내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가사일이 잘 분담 되는 부부는 민주적이다. 화목했다. 배려는 배려를 불러왔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살림을 좋아하는 부부도 별 탈이 없었다. 문제는 우리처럼 둘 다 안 하려고 할 때 생기는 듯했다.


친구는 남편에게 담당인 화장실 청소를 왜 안 하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보기엔 깨끗한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했다. 결국, 청소는 더러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의 몫이었다. 그 일이 반복되자 친구는 일주일에 한 번 청소 도우미를 불렀고, 그 후, 집 안의 평화가 찾아왔다고 했다.


그 방법이 좋은 듯 싶었지만, 청소도우미를 부르는 건 우리에게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여전히 우리는 집안 일로 다투었다.


10년이 넘게 지속된 집안일 전쟁을 끝내 준 건 상담사가 아닌, 로봇청소기였다. 서로가 하기를 바라며 날마다 싸우며 미루던 청소도

"오늘 로봇청소기 돌릴 거야?"라고 우아하게 제안하며 답하면 끝이었다.

(물론 시기적으로 아이가 커서 육아의 강도가 줄어든 이유도 있다. )

그 후 차례로 식기세척기, 건조기가 집 안의 유엔 평화군처럼 들어왔다.


로봇 청소기는 우리에게 <사랑과 전쟁>의 신구 아저씨였다.

회사에서 지친 남편을 이해하기도 하고

반복되는 가사노동의 분담을 원하는 나의 마음을 다독이기도 했다.



신구 아저씨가 우리 집에 함께 산 후부터는 평화가 찾아왔다.


주기적으로 필요했던


4주 뒤에 뵙겠습니다.

라는 말도 필요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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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코로나로 인해 남편이 재택 근무를 하는 , 끊임없이 울려대는 회사의 전화를 경험하면서, 남편의 회사일이 엄청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에 와서 집안 일을  힘이 없다는  뒤늦게 깨달았다. 시간이 흐른 지금, 남편은 처음보다는 집안일에 ...으로 참여한다.


 모습을 보며 과거의 상처나고, 얼었던 나의 마음도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친정엄마는 말했다.

부부로 살다보면 별의 별 문제가 다 생겨. 그런데 시간 지나면 그 문제를 지나는 날이 와.

잘 지나야 해.


별 탈 없는 부부는 없어.


그 말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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