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 기록
시간 속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친구처럼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헤어진다. 내 몸으로 산지 40년이 지났지만 이런 감각은 처음이었다. 허리디스크의 통증을 처음 느낀 건, 2년 전이었다. 생일에 디스크가 터졌다. 365일 중 하루, 생일은 작은 로망을 꿈꾸는 날이다. 특별한 생일보다 특별하지 않는 생일이 더 많았다는 걸 데이터적으로 알면서도 늘 생일날만 되면 작은 기대를 품었다.
생일, 가족과 함께 엄마를 모시고 영종도 여행을 갔다. 여행만으로도 로망의 반은 이미 실현되었다고 생각했다. 저녁 시간 메뉴를 정하는데, 남편은 바닷가에 왔으니 회를 먹어야 한다고 했고, 나는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식사를 하고 싶었다. 레스토랑도 마땅하지 않아서 결국 남편이 예약한 횟집에 가게 되었다.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시장처럼 소란했다. 여기저기에서 술과 반찬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음성이 얽혔다. 직감했다. 회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갈지 모르겠다는 걸.
내 생일인데... 내 생일을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니. 생일이 아닌 날에도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손님이 많아서 회가 나오는 속도가 느렸다. 분식집도 아니고, 비싼 값을 지불한 대가가 형편없다는 사실에 못마땅했다. 30분. 40분. 한 시간이 넘어가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음을 느꼈다. 얼굴이 붉어지더니 온몸에 열이 났다.
“그냥 나가면 안 돼?”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이미 횟값을 낸 상태였고, 직원들은 우리 것이 곧 나온다는 말만 반복했다. 평소에도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생일을 망쳤다는 기분이 들었다. 씩씩대는 나를 앞에 두고 남편과 친정엄마는 내 눈치를 보았다. 딸은 그 긴 시간 동안 불만 없이 기다렸다. 나만 냄비 끓듯 요동쳤다.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감정이었다. 나가고 싶은 심정이 21번 지났을까? 아무 일도 모른다는 듯 우윳 빛깔 회가 도착했다. 남편은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회는 처음이라며 행복해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내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곧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짧은 거리였음에도 투명한 지팡이를 짚듯 엉금엉금 숙소로 돌아갔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 걸을 때마다 한쪽 다리에 찌릿찌릿 전기가 올랐다. 양말을 신기도 어렵고, 세수를 하려고 해도 허리를 굽힐 수 없어 소매 끝에 물이 줄줄 흘렀다. 집에 도착해서도 허리의 통증이 계속되었다. 그날 이후로 디스크의 세계로 입장했다. 그동안 언어로서의 디스크를 자주 들어왔지만 내가 겪은 일이 아니었기에 잘 몰랐다. 하지만 이제 디스트는 온몸으로 느끼는 나의 세계가 되었다.
동네 정형외과를 찾았다. ct를 찍었고 초기 디스크라고 했다. 치료 방법을 물으니 의사는 “그동안 잘못된 자세로 척추를 혹사시켜 놓고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죠.”라는 말만 했다. 물리치료를 하라고만 했다. 해결책이 없는 줄 알았다. 그 후에도 아픔이 계속되자 신경외과를 찾았다. 이번에는 검게 죽은 근육이 통증의 원인인 것 같다고 그 근육을 풀어주는 주사를 권했다. 200만 원이 넘는 가격이었기에 망설여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무렵 통증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통증이 없으니 살 것 같았다. 몸이 자유로우니 기분도 자유롭고 걸음도 자유로웠다.
또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기에 허리를 아껴 썼다. 바닥에 있는 휴지통의 높이를 높였고, 엎드려서 감던 머리를 서서 감았다. 세수를 할 때에는 무릎을 굽히며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정선근 의사가 디스트 환자는 허리를 굽히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길거리에 200만 원이 떨어져 있어도 줍지 말라고 했다. 그 돈이 허리 굽히는 일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 말을 새기며 살았다.
2년이 흘렀다. 그때만큼은 아니었지만 간헐적으로 통증이 지속되었다. 내 기준은 정점을 찍은 그때가 아니면 괜찮다 여겼다. 곁에서 지켜본 남편이 전문 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그때만큼 안 아픈데 뭐 하러 가? 계속 진료받으려면 가까운 곳을 가야지라며 미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되었는지 남편이 월차를 쓰고 척추 전문 병원인 <콕 통증의학>을 찾았다. 대표원장님께 진료를 신청했다. 내 차례가 되어 증상을 이야기했다.
“2년 전 2월에 극심한 통증이 지속되었어요. 다리 절임이 있었고, 그 후 괜찮아 지다가 11월쯤 다시 통증이 시작되었어요. 최근에는 두통까지 동반되는 현상이 있어요. 두통과 어지럼증은 전에 이석증의 반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는 2년 전부터 적어온 통증 기록을 바탕으로 의사 선생님에게 증상을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의사 선생님은
“허리 MRI와 목 MRI, 자율신경계, 근전도 검사를 해볼게요. 어지럼증이 있다는 건 신경계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거든요.”
말에 전문성이 느껴졌다. 처음 갔던 동네의 정형외과에서는 꾸중만 있고, 처방이 없었기에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차트를 보며 바로 시술을 해야 된다고 했다.
“디스크가 신경을 누르고 있어서 염증이 생겼는데, 굳은 염증을 녹이고 그 안에 약을 발라서 좋아지게 하는 시술이에요.”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니, 당장 시술을 결정했다. 꼬리뼈를 통해 카테터라는 긴 도구를 넣어 치료하는 신경성형술 PEN 시술을 받았다. 지금은 경과를 기다리고 있다. 시술 후에도 운동을 잘해야 재발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후는 나의 몫이 되었다.
건강했던 세계에서 디스트 통증의 세계로 들어섰다. 통증의 세계를 스쳐가고 싶지만 어쩌면 통증의 세계에 한 발을 딛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림자는 소리 없이, 예고 없이 찾아오듯 우리에게 다가오는 세계도 그렇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어떤 세계이든 그 속에 머무르며 살아내는 것밖에는 없지 않을까? 내가 문을 연 적은 없지만 디스크 세계의 문을 닫고 싶다. 통증 없는 세계로 걸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