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하연 Nov 27. 2024

몇 년 동안, 안 나가던 집이 나간 이유

베란다 창 밖 기록

큰 문제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 해결되면 스트레스는 사라진다. 하지만 작은 문제를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고 몇 년 동안 지속될 때, 손발이 묶인 듯 고통스럽다. 이사를 해야 했지만 집이 2년 넘게 나가지 않았다.


결혼 후, 몇 번의 이사를 했다. 첫 번째 집은 분양받은 아파트였다. 23층이라 뷰는 좋았지만 이 아파트의 큰 문제는 지하철 소음이었다.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환상을 만든다. 아파트에 들어갈 때, 지하철과 가까웠지만 저층이 아니니까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고층까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거라고 추측했다. 착각이었다. 23층에서도 지하철이 바로 앞에 있는 듯 시끄러웠다. 역세권이라는 즐거움도 잠시, 네 계절 중 창문을 닫는 겨울에만 조용했다.      


아이가 크면서 짐이 쌓여갔다. 남편과 나는 거실에 큰 책상을 놓는 게 꿈이었다. 살던 아파트의 큰 평수는 비싸서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역에서 15분 떨어진 집을 알아보았다. 단지가 조용했고, 조경도 아름다웠다. 그 아파트의 매물은 딱 하나. 2층뿐이었다. 선택지가 없었기에 그곳으로 이사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집은 시끄러웠지만 역세권이었기에 아파트를 팔 때, 한 번에 집이 나갔다. 이사란 쉬운 것으로 생각했다.     


큰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 간 후, 짐을 다 넣고도 공간이 남았다. 우리의 꿈대로 거실에 큰 책상을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2층이라 빛이 조금밖에 안 들어왔다. 거실 창밖으로는 도서관이 있었다. 창문으로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면학 분위기는 저절로 형성되었다. 그리고 우리를 괴롭히던 소음으로부터 해방되었다. 365일 조용한 것도 축복이었다. 몇 년 뒤의 일은 예상하지 못한 채, 사는 동안은 참 좋았다.


신도시에 분양받은 아파트에 들어갈 때가 다가왔다. 이사를 해야 했다. 사는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전세 계약만료 전이었기에 들어오려는 사람이 있어야 나갈 수 있었다. 6개월 전에 내놓았지만, 집은 나가지 않았다. 몇몇 사람이 집을 보고 갔지만 연락이 없었다. 입주 날짜는 다가오는데, 집 거래가 이뤄지지 않자 초조했다. 밤에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내 힘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이사였다. 결국,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서, 분양받은 새 아파트에 갈 수 없었다. 우리는 그곳에 계속 살았고, 분양받은 집에 전세를 들였다. 전세가 아닌 내 집에 산다는 꿈은 결국 이룰 수 없었다. 살고 있는 집이, 나가지 않는 집이 미웠다.



1년이 지났을까? 남편의 회사에서 부서이동이 있었다. 천안에서 동탄으로 옮겨야 했다. 이번에는 꼭 이사해야 했다. 이번에도 계약타이밍이 맞지 않아 우리가 다음 세입자를 맞춰 놓고 나가야 했다. 야속하게, 인생의 타이밍은 전세 계약 2년에 딱 맞지 않았다. (전세의 설움을 몇 번을 느꼈다.) 이번에는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전보다 많았다. 밖에 나가 있다가도 부동산에서 온다고 하면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일상의 우선순위는 집 보여주기였다. 모르는 사람이 집을 보러 올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동시에 기대했다가 실망하기를 반복했다. 19번이나 집을 보러 왔지만 거래되지 않았다. 오는 사람마다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말이 19번이지 19번의 사람을 맞이하고, 매번 집을 청소했다. 부동산 중개인과도 몇십 번씩 연락을 주고받았다. 어떤 사람은 두 번 집을 보러 온 적도 있고, 어떤 사람은 서랍 곳곳을 열어 속옷까지 보기도 했다. 남들은 모르는 자잘한 불행이 쌓여갔다.      



2층이라서일까?

빛이 안 들어와서일까?

베란다 확장이 안 되어서?

리모델링이 안 되어서?

10년 된 아파트여서?      



혼자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들어올 땐, 이 집 하나뿐이었지만, 우리가 나갈 때는 아파트에 매물이 많았던 것도 거래가 안 되는 원인이었다. 집주인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였겠지만 2층임에도 가격을 내리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이번에는 후퇴할 곳이 없었다. 부서발령으로 지역이동을 해야 하기에 꼭 집이 나가야 했다. 19번째의 사람. 집을 보러 왔다. 평소처럼 사람들이 집을 찬찬히 둘러보고 나갔다. 다음 날, 이번에는 반응이 어떠냐고 물어보니, 부동산 중개인이 그분이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저번에도 거래될 뻔하다가 안 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최대한 담담하게 들으려고 노력했다. 한 번의 실패와 몇 개월 동안 풀리지 않는 문제. 문제의 열쇠가 내게 있다면 좋으련만 나는 열쇠 구멍일 뿐, 맞는 키는 상대에게 있었다. 그날 밤, 곰곰이 생각했다.     



‘이 집 진짜 좋은데…. 조용하고, 거실 창문이 넓어서 계절마다 나무들이 거대한 작품을 보여주듯 아름다운데….’ 그리고 카카오 스토리에 찍어 두었던 사진을 보았다. 가을이면 나뭇잎이 노랑과 빨강으로 물들었다. 또 한참 스크롤을 내리니 겨울이면 눈이 쌓인 나무가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이 사진을 보내볼까? 다음 날, 혹시 하는 마음으로 부동산 중개인에게 두 장의 사진을 보냈다. 우리 집 창밖이 이렇게 아름답다고, 미술관에 갈 필요가 없다는 글을 썼다. 몇 시간 뒤, 계약하자는 연락이 왔다.



베란다 풍경 사진이 상대가 결정하는데 큰 몫을 한 모양이었다. 베란다 풍경은 우리 집에 살아야만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거실에 가만히 앉아서 계절의 색을 실시간으로 감상하는 건 귀한 기회였다. 이렇게 쓰일 줄 알고 계절마다 창밖의 풍경을 기록한 건 아니었지만 사진은 중요한 순간에 빛을 발했다. 오랫동안 나를, 우리 가족을 괴롭히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만약에 찍어둔 사진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 뒤로도 몇 명의 사람을 맞아야 집이 나갔을지 예측할 수 없다.

안 나가던 집이 나가게 된 건, 날마다 윤이 나게 닦은 바닥과 가구 때문도 아니고, 빵 굽는 맛있는 냄새도 아니었다. 부동산 중개인의 상세한 설명도 아니었다.



한 장의 사진 덕분이었다.           

그 후로 난 꼭 계절마다 창 밖의 사진을 찍는다. 언제 또 쓰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