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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엄마

by 하하연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 화장실 하수구의 머리카락을 주울 때마다 엄마가 떠올랐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해 본 적 없는 일이었습니다. 늘 엄마의 몫이었죠.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후, 그때의 엄마를 매 순간 다시 만납니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집안일을 할 때마다 ‘우리 엄마 많이 외롭고, 힘들었겠다. 그때 내가 좀 할걸.’ 후회를 합니다.


결혼 후, 아이를 낳았을 때도 엄마가 많이 도와주었어요. 출산 후, 면역력이 약해져서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푹 잘 수도 없었고, 아이에게 모유를 줄 수도 없었죠. 정신을 차려서 아기를 돌보아야 하는데, 몸과 마음 모두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남편은 회사 일로 바빴기에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엄마는 바로 달려와서 백일 동안 함께 하며 손녀를 돌봐주었어요.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몰랐던 엄마의 사랑과 도움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매 순간 고마웠습니다. 10대 20대에 노느라 바빠서 엄마를 외면했던 시간을 나중에 꽉 채워서 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어린이 집을 다니기 시작한 후 저에게도 시간이 생겼습니다. 엄마가 좋아하는 유리 상자 콘서트도 보러 가고, 식물원도 가고, 솥 밥도 먹으러 가고, 뜨개질 전시도 보러 갔습니다.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 소중해서 인스타그램에 #난난데이트라는 해시태그로 사진을 찍어 모아두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친정 엄마의 열성팬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젊었을 때, 일하느라 우리에게 해준 게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손주를 돌보는 게 좋다고 말합니다. 첫 손녀가 자라고, 동생네 아이들이 태어났어요. 딸에게 한 것처럼 조카들에게도 할머니의 사랑을 듬북 주었습니다. 올케는 사주지 않는 젤리랑 사탕도 가끔 몰래 사주고, 손자가 축구를 하자고 하면 함께 공을 차러 나갔습니다.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할머니 램프였습니다. 그랬던 손주들이 어느덧 중학생, 초등 고학년이 되었고, 엄마는 뜨개질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엄마의 일이 생기는 바람에 자주 못 봅니다. 대신 일주일에 한 번, 전화를 합니다. 데이트하지 못해서 #난난데이트 기록은 못 하지만 통화가 끝나면 엄마와 나눈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소중한지 몰랐던 엄마와의 시간을 간직하고 싶어서 열성팬은 노트에 에피소드를 적습니다.



< 전화 기록 1>


“은채가 울면서 전화가 온 거야? 놀라서 무슨 일이냐니까, 대전 할머니한테 전화한 건데 잘못 걸었다고 끊더라. 얼마나 놀랐는지. 은후가 괴롭혔나? 별의별 생각을 다 했어.”

“ 왜 울었대? ”

“집에서 자기 엄마가 숨었는데, 안 보여서 놀라서 울었대. ”

“별일 아니었네. 은후가 괜한 누명 쓸 뻔했네.”

“그러니까.”



< 전화 기록 2 >


2월의 어느 날, 전화를 했는데 엄마가 소곤거리며 전화를 받는다.

“엄마 어디야?”

“고터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 : 엄마가 쇼핑하는 곳) 갔다가 집에 가는 버스야.”

“뭐 사러 갔어?”

“저번부터 사고 싶었던 겨울 코트랑 코르덴 바지. 근데 없어. 봄옷만 있네. 그래서 봄옷 샀어. 우리 여행 가잖아?”

“5월에 가는 여행을 벌써 준비하는 거야?”

“미리미리 준비해야지.”

가족여행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도 수학여행을 기다리는 듯 준비하는 엄마의 귀여운 모습을 발견했다.



< 전화 기록 3 >


“예린이가 할아버지 농장에 복숭아나무만 많이 심으면 안 되냐고 묻네. 왜 우리 복숭아는 지금 수확 안 해?”

“우리가 심은 건, 가을 복숭아야. 여름에 나는 게 아니야.”

“왜 가을 것만 심었어?”

“여름 수확하는 복숭아는 장마가 오면 맛이 덜해. 그래서 장마 피해서 수확하는 가을 복숭아를 심었지.”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네.”



< 전화 기록 4 >


여행을 다녀온 후, 가족 모임이 있었다. 엄마에게 줄 선물을 건넨 저녁,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이거 뭐야?”

“뭐?”

“네가 준 거. 가루.”

“그거? 비누.”

“지금 입에 털어 넣었다가 이상해서 뱉었어.”

“그걸 먹었어?”

“먹는 건 줄 알았지.”

“아까 정신없어서 내가 깜박하고 설명을 안 했네. 큰일 날 뻔했네. 아이고. ”

“먹을 거랑 같이 있어서 먹는 건 줄 알았어. 희한하게 생겼네 하면서.”

“안 삼켰지? 내가 설명해야지 하고 있다가 지금까지 까먹었어. 가루비누 써보니까 신기하길래 엄마도 써보라고 준 건데 대형 참사네. 내가 우리 엄마 저세상 가게 할 뻔했어. 미안해”

“큰일 날 뻔했어. 자기 전에 무슨 맛일까? 궁금해서 지금 입에 털어 넣다가.”

캡슐에 든 가루비누가 간식들 틈에 있어 먹는 건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엄마가 놀라서 전화했다. 앞으로 엄마에게 여행에서 사 온 물건을 선물할 때에는 꼭 설명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전화 5 >


“엄마, 아빠 중연이(동생)랑 경복궁 갔다 왔어.”

“경복궁? 누가 데이트 코스를 경복궁으로 정한 거야? 엄마랑 아빠랑 경복궁에 추억이 있어? 가고 싶었어?”

저편에서 대답은 안 들리고,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경복궁이 아니라, 고깃집.”

“아아. 난 또.”

“코스별로 요리가 잘 나오더라. 너무 맛있게 먹었어.”

“중연이가 잘했네. 엄마, 아빠 사랑 많이 받네.”


친구들과의 시간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온 생애를 함께 한 부모와의 시간도 귀합니다. 엄마의 전화 통화를 기록하는 건 소중해서입니다. 동시에 엄마와의 시간이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마음 바구니에 담아 보세요. 그리고 노트 위에 꺼내 놓으세요. 기록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습니다.




* 기록해 볼까요? 엄마의 말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자주 만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좋아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기록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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