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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Oct 02. 2022

누군가의 호호호(好好好)

우리 주위에는 무언가에 빠져 좋아하는 명랑한 사람들이 있다.





“혹시, 아까 발표한 분 맞으시죠?”

“네”

“ppt 사진 중에 문진 있었는데, 어디서 사셨는지 궁금해서요. 제가 문진을 수집하는데, 알려주실 수 있나요?

    

내가 산 문진 (하트 모양의 돌)



에디터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한 학생이 내 자리로 다가와 두 손을 맞잡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물었다.

  

“아 그거요? 제가 성수동에서 샀던 건데, 정확한 상호가 기억이 안 나서요. 연락처 알려주시면 찾아보고 알려드릴게요.”     



수집을 좋아하는 내게, 또 다른 수집가의 등장은 행복한 만남이다. 상대가 수집하는 물건은 무엇인지, 또 얼마나 다양한 것들을 수집하고, 어떤 이야기가 쌓였을지 궁금했다. 물건의 구매처가 잘 생각나지 않았지만 구글 지도를 펼쳐가며, 그때 갔던 음식점을 중심으로 움직인 동선을 찾아보았다. 성수동의 헤븐 센스에서 구입한 것이었다. 지도를 첨부해 문자를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 





강의 내내 문진 생각이 둥둥 떠나녔다니....


수집은 타이밍이라는 것은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 순간을 놓치면 좋아하는 물건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만나면 상대가 모르는 사람이어도 무언가에 이끌리듯 다가가 말을 건넨다.



생태학계의 손꼽히는 대가인 댄 심벌로프라 교수도 재미있는 문구의 티셔츠를 수집했다. 어느 날, 강의를 하러 간 학교에서 식사를 하러 가는 중에 어떤 학생이 재미있는 문구의 티셔츠를 입을 것은 보고는 따라가서 어디서 구입했냐고 물었단다. 학생은 다짜고짜 본인을 붙잡고 이상한 질문을 하는 그 사람을 경계했지만, 그가 누구인지, 티셔츠 수집을 한다는 설명을 듣고, 결국 자신의 티셔츠를 벗어 주었다고 했다.

                                                                 <유튜브 최재천의 아마존 : 과학자의 색다른 수집 중>     




수집의 순간에는 내가 소극적인 사람인지, 적극적인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상대가 누구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내가 향하는 시선 끝에는 수집품만 있을 뿐이다. 수집은 나에서 누군가에게로 번져가는 일이기도 하다. 나의 관심사 너머 누군가의 수집도 눈여겨보게 된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 <아워 플래닛>에서 음식 탐험가 장민영 씨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굴을 사랑해서 전국 각지의 굴을 다 맛보러 다니고, 그것을 토대로 굴 지도를 만들었다. 지역별로 나는 굴의 종류뿐 아니라, 와인처럼 서로 다른 굴의 맛을 소개했다.    


속초바위굴(자연산_해녀) : 동해 바다의 야생미, 단단한 관자, 중간 정도의 바디감.

덕적참굴(자연산) : 서쪽바다 북단에서 온, 작지만 옹골찬 맛, 풍부한 미네랄 맛이 매력적인 굴.

거제참굴(수하식) : 양식굴이지만 야생의 터프함이 남아 있어 다양한 매력이 느껴지는 굴.

통영참굴(수하식(연승수평망)): 녹진하고 우아한 말, 달큰한 맛이 매력적인 굴.

여수참굴(수하식)  : 시원한 맛, 빅적 강한 양념에도 밀리지 않는 힘.

완도참굴(수하식) : 첫맛은 시원하고 끝맛은 다소 묵직한, 중성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     




한 번도 본 적 없는 지도였다.


와인에만 맛 표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직접 굴이 나는 곳을 찾아다니고, 국내의 굴을 한 곳에 모아 굴 페스티벌을 기획하기도 했다. 굴사랑이 빚어낸 잔치였다. 굴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이 보았지만, 굴지도를 만드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은 없던 길을 만들기도 한다.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 


전에는 굴의 맛이 다 비슷하다고 여기고, 어느 지역의 굴인지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굴 수집가의 굴 지도와 맛 표현을 보는 순간, 굴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지역별로 다른 굴의 맛을 글이 아닌 혀로 느끼고 싶어졌다.


누군가의 수집은 이전에는 열어 본 적도 없는 창을 열어주기도 한다.



 

제주도의 <세계 조가비박물관>에서도 명랑한 이야기를 만났다. 그동안 바지락과 홍합 등 식탁 위에 올라오는 몇 개만 알고 지냈는데, 바닷속에 이렇게 아름다운 조가비가 있었다니... 우주를 가 본 듯 놀라웠다. 수영을 못해도 바닷속에 들어갈 수 있었다.






<조가비 박물관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






 만두를 닮은 통통한 모양에 실로 스티치를 한 듯한 조개도 있고, 블랙 앤 화이트의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은 조가비도 있었다. 반투명의 오렌지 색 레이스를 연상케 하는 우아한 조개는 자연이 빚은 조각이었다. 보고 있으면 아름다움에 반하고, 앙증맞음에 반하고, 다채로움에 반했다. 




이곳에 있는 것들은 서양화 화가인 명연숙 박물관 관장이 41년간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만 오천여 종의 조가비라고 했다.  많은 조가비를 어떻게 수집했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저 감상만 하기에는 그곳에 놓인 무수한 시간이 보였다. 혹시  많은   바닷속으로 들어가서 수집한 것일까? 그건 불가능한 일인 듯한데……. 혼자 생각하다가, 박물관 관계자에게 물어보았다.  

   

“관장님은 이 많은 조가비를 어떻게 수집하셨을까요?”

“제가 전해 듣기로는 세계의 곳곳의 조가비 컬렉터들과 연락해서 직접 만나 가져오기도 하고, 기증받기도 하고, 사 오시기도 했대요.”     



조가비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처럼 보였다. 연락하고, 만나고, 전해받고, 가져오는 과정 모두 다 어려웠으리라... 하지만 매 순간 행복했을 것이다. 억지로 하라면 할 수 없는 것이 수집이다.


관장님의 수집은 박물관이 되어 많은 사람이 미처 알지 못한 세계를 만나게 해 주었다.

           

좋아하는 것들이 많을수록 우리의 삶은 자주 반짝인다. 어쩌면, 평생을 반짝일  있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상을 받는 일은  번의 기쁨을 가져다주지만 수집은   , 몇천 번의 환희를 가져다준다

수집가들은 표정은 해맑고눈빛은 반짝이며호기심이 가득  있고열정적이다수집은 우리의 삶을 명랑하게 한다호르몬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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