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하연 Oct 06. 2022

도대체 그거 왜 해요?

수집을 왜 하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시간을 잡아 곁에 두는 것을 좋아한다. 고3 때,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주신 디지털카메라가 있다. 할머니의 마지막 선물로 시간을 떠나 보내지 않고 곁에 둘 수 있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그 카메라로 청춘의 시간을 기록했다. 처음에는 싸이월드에 기록했고, 그다음에는 카카오스토리와 블로그, 그 후에는 인스타그램에 기록했다. 기록하는 플랫폼은 세월에 따라 달라졌지만, 기록의 습관은 그대로였다.


20대, 기록의 주제는 없었다. 즐거웠던 순간들을 마구 찍어 남겼다. 그날 만난 사람들을 찍고, 그날 입은 옷, 그날 먹은 음식들을 기록했다. 본격적으로 의미 있는 기록에 열중한 건 30대, 아이를 낳은 후부터였다.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은 고요했다. 외부와의 교류가 없으니 흐르는 시간이 더디게 느껴졌다. 반대로 마음은 빠르게 흘러, 조급했다. 아이는 쑥쑥 크고 있었지만, 나는 멈춰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 감정을 떨쳐버리고 싶어 하루를 열심히 기록했다.


기록이라는 노로 시간이라는 강을 저어갔다.      



여행의 기록을 적어 놓은 수첩




짬이 나는 대로 책을 읽고 동시를 쓰고, 일기를 썼다. 하루에 일어난 소소한 일들을 적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듯 투명했던 시간을 검은색 글자로 형상화했다. 나에 대한 갈증을 기록으로 해소했고, 기록이 쌓이면서 시간의 무늬가 생겼다. 시간의 순서로 기록한 것들을 지나,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묶어서 기록했다. 인스타그램은 해시태그가 있어 좋아하는 것들을 모을 수 있었다.     




#위트윙크 : 일상에서 만난 위트 있는 장면, 간판, 글귀를 기록했다.

#하연책읽기 : 그동안 읽은 책들 가운데 좋았던 책과 기억하고 싶은 책을 기록했다.

#하연강의 : 온, 오프라인의 강의를 들으며 배운 것들을 기록했다.

#하연전시 : 그동안 방문한 미술관과 영감을 준 작품을 기록했다.

#하연체크 : 체크무늬 접시, 냅킨, 옷, 등 일상에서 수집한 체크를 기록했다.

#하연쇼핑 : 쇼핑한 물건 중 마음에 들거나 미감 있는 물건을 기록했다.

#하연꽃꽃 : 계절마다 산 꽃이나, 받은 꽃들을 모아두었다.

#하연맥주 : 편의점에서 나오는 다양한 맥주를 수집했다.

#난난데이트 : 엄마와 데이트한 순간들을 적어놓았다.

#식식유머 : 대화 중 남편이 한 재미있는 말을 기록했다.

#린작 : 아이의 톡톡 튀는 생각, 그린 그림들, 대화 속 말을 모아 놓았다.

#율율율과 : 친구와 만날 때마다 함께 간 음식점, 카페, 나눈 이야기, 주고받은 선물을 기록했다.    


 

해시태그를 이용하면 온라인 속에 나만의 서랍이 생겼다. 그 위로도 계속 쌓을 수 있었다. 사용하는 단어의 개수 제한이 없기에 많은 단어를 가질 수 있다. 물건들을 수집하면 보관할 공간이 필요한데, 온라인 속 해시태그를 이용한 수집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아 좋았다. 단지 좋아서 시작한 수집 중 하나인 #린작은 아이의 말을 담은 <아이의 말 선물>이라는 책이 되기도 했다.



누군가

체크는 왜 수집하는 거예요?

라고 물었다.


그 말을 들으며 당혹스러웠다.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좋아서. 가 다였다.



무언가가 되지 않는 것들.

이유를 찾기 어려운 것들.

누군가가 보기에는 무용한 것들이었다.







      

<인생을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인생을 꼭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이기에.     

하루하루 일어나는 그대로 맞이하십시오.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을 모아둘 생각을 하지 않는다.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뿐입니다.      






기록한다는 건 내가 경험한 모든 것에 감사하는 일이다. 릴케의 시처럼 매 순간을 즐기고 감동한다. 감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록한다. 기록하면 쌓인다. 쌓이면 무언가가 된다.


얼마 전, 아이와 동네 레스토랑에 파스타를 먹으러 갔는데, 너무 맛있다며 “이 집은 곰팡이로 요리를 해도 맛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얼마나 맛있었으면 저런 말을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정이 듬뿍 들어간 맛깔스러운 표현을 메모장에 바로 적어두었다. 며칠 뒤면 생각나지 않을 말이었다. 말은 연기 같아서 금방 사라진다.      


시간 속에 녹는다.      



하지만 기록해 둔 말은 영원하다. 언제든 꺼내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장면과 만나는 사람들, 들은 말은 사라지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다. 엄마와의 시간을 수집하는 것도 엄마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함께한 시간은 길지만 기억나지 않는 순간들이 대부분인 것이 속상했고, 기록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기록하면 일상 속에 숨겨진 의미와 행복을 발견하게 된다.

순간의 메모와 기록이 쌓이면 우리의 삶은 영화가 되고, 노래가 된다.


모든 인간에게 시간은 같은 속도로 흐르고, 모두가 영원을 가질 수 없다. 공평한 시간을 더 가질 수도 없고, 멈출 수는 없지만 기록을 통해 사라지는 기억을 붙잡아 차곡차곡 쌓을 수 있다.


수집한 것들을 들여다본다.

삶에서 소중한 것들이 모여있다.


있는지도 몰랐던 것들을 만나 의미가 되었다.

몰랐던 존재를 들추는 일은 나의 감정을 들추는 일이기도 하다. 


                    

작가의 이전글 누군가의 호호호(好好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