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생 1학년, 교직 인적성 검사 탈락
교육대학교에 재학하면 매년마다 전교생이 치르는 시험이 있다. 말 그대로 교직 ‘인적성 검사’ 교사의 자질을 시험하는 통과의례라고 생각하면 된다. 구체적인 수치는 잘 모르나 96%는 손쉽게 이 시험을 통과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런 의례적인 시험에서 4%는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수치가 너무나 작았기 때문일까? 검사 결과가 나올 때 즈음이면 커뮤니티에는 때 아닌 낙방자 인성 논란이 불거지기 일수이다. 놀랍게도 나도 4%이다.
Q.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그 능력만큼 차지해도 되는가?
□ 매우 그렇다 □ 그렇다 □ 보통이다 □ 그렇지 않다 □ 매우 그렇지 않다
교직 적인성 검사의 수십 개의 문항 중 지금에야 기억나는 문항은 이 한 가지이다. 물론다른 성격의 문항 또한 많지만, 이 질문 하나가 적인성 검사를 대표하다기에 부족하지 않다. 일전에 학교 선배님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선배님께서 '교직 인적성 검사를 탈락하면 되게 골치 아파 진다. 그냥 사고라는 걸 하지 말고 올바른(?) 답만 찍으면 통과하는 시험이야.' 선배님께서 내가 특히 불안하셨는지 아니면 그냥 말이 나온 건지는 모르겠으나 신신당부를 하셨다. 아마 선배님 말씀처럼 생각이라는 걸 거치지 않고 옳은 답을 골랐으면 그 이후에 겪을 4번의 상담과 재시험을 겪진 않았을 텐데.
질문 자체가 잘못 되었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제 능력만큼 가져가면 될 것이지 안될 건 또 뭐람.' 아니 오히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제 주머니에 있는 돈만치만 살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 능력이 부족할지라도 약간의 허풍을 더해 가진 능력보다 더 얻어내고 싶은 게 인간 아닌가. 선배의 신신당부는 까맣게 잊은 채 문제를 풀어내려 갔고 그 결과 어김없이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문뜩 교육심리학 시간이 생각난다. 인간의 행동에 대한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명하시던 차였다. "아이의 학습에 있어서는 재능과 후천적 환경 모두 영향을 미칩니다. 후천적 환경은 매우 중요하지만 재능이라는 것 또한 무시할 수가 없죠." "심리학을 전공한 제 주변 분들 또한 후천적 학습으로 극복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요. 다만, 우리는 그것을 입밖에 내서는 안되고 우리가 항상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아마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이야기일 것이지만 이 안에는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사실 불가능한걸 머릿속으로는 알지만 내색해선 안되고 더더욱 입 밖으로 꺼내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왜일까?
초등 사회교육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난해한 질문을 던지시곤 그 답변에 대한 의견 나눔을 즐기신다. 수업을 진행하시던 도중 학생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셨다.
"스타 강사들을 보면 수강생들이 수백 명 혹은 그 이상에 육박합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은 곧 돈이라는 사람들의 인식이 강하죠. 이러한 상황에서 학원 강사가 학교 선생님께 나는 '프로'이고 너는 '아마추어'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나를 호명하시며 이러한 상황에 대핸 나의 답변을 물어보셨다. 이 복잡한 실타래 같은 질문을 풀어가기 위해 먼저 교수님께 다시 여쭈었다. "제가 질문을 받은 당사자라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에 대해 물어볼 것 같습니다." 그러자 교수님께서 "가르치는 능력의 차이가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 짓는 기준이 되지 않겠는가?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들의 수는 그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하네." 그 말을 듣고는 잠시 생각을 고른 후 이렇게 답변을 드렸다. "프로와 아마추어라고 하시니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축구 종목입니다. 축구 경기로 예를 들자면. 아마추어 선수들과 프로 선수들의 경기에서 아마추어는 프로를 이길 수 없습니다. 아마추어 선수들은 패스나 돌파에 급급하다면 프로 선수들은 골을 넣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합니다. 경기 전체를 조율하고 흐름을 파악하면서 게임을 진행하죠. 이것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봤을 때 학교 선생님은 수업뿐만이 아닌 학교생활 전반에 걸쳐 운영을 하고 학생들을 조율합니다. 제 논리에 따르면 학교 선생님이 '프로'이고 학원 강사는 '아마추어'이지 않을까요?" 마무리하는 말로 "사실 범주가 다른 두 대상을 비교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학원강사와 교사를 비교하는 건 똑같은 운동선수이지만 종목이 다른 메시와 타이거 우즈 중에서 누가 더 운동을 잘하느냐를 묻는 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며 마무리하였다. 교수님 또한 애초에 이러한 점에 대해 모르시고 질문을 던지신 게 아닐 것이다. 평소 문답법을 좋아하시는 분이시라 나름대로 생각해낸 답변이 마음에 들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위의 교수님께서 던지신 질문과 같이 교사, 그중 초등교사의 전문성은 항상 시험대에 들기 마련이다. 초등교사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대개 초등 교과과목의 깊이와 관련되어 있다. 이들에게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은 '초등교사의 일은 조금 특별해요. 우리는 수업뿐 아니라 교우관계, 교실 경영, 업무처리와 같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 것이다. 이렇듯 교사라는 직업은 전략, 성과가 아닌 명확히 말해질 수 없는 은유, 이미지로써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 '사랑', '믿음', '행복', '미래', '순수'와 같은 은유나 이미지로 말이다.
'사랑', '믿음', '행복', '순수'는 교사의 정체성이다. 교육대학교 또한 이러한 은유나 이미지로부터 자유롭진 못하다. 은유와 이미지로 가득 찬 세상에서 문제에 직면한다면 이성이나 논리로써 이 문제를 풀어가려는 걸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감정이란 건 원체 제 마음에서 의도치 못한 순간에 피어나는 법이다. 타고난 성향이 감성(F)보단 이성(T)에 치우친 나조차도 머리로는 내 행위가 어리석다는 걸 알지만 서운한 감정이 들 때면 표정이나 말투에 그대로 묻어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서운함을 느끼는 사람에게 논리로써 접근하는 건 상황만을 악화시킬 뿐이다. '서운함'이라는 현상만이 남아 있을 뿐 이 현상을 일으킨 원인을 연역하는 건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오늘 피어난 꽃을 보면서 왜 저 꽃이 어제나 내일이 아닌 오늘 피어났는지를 알아내려는 행위와 같다. 단지 이 꽃은 필 때가 되어서 핀 것일 뿐이었을뿐. 감정이 최우선이 되는 현상을 필자는 '가슴에 의한 독재'라고 표현하곤 한다. 한 개인과 마찬가지로 '교대'라는 왕국에서도 가슴에 의한 독재가 자행된다. 이 왕국은 '사랑', '믿음', '행복', '순수' 이 네 명의 군주가 다스리고 있는 곳이고, 네 가지 덕목이 부족한 사람이나 혹은 이성 또는 논리로써 세상을 보는 사람은 철자한 이단(異端)이다.
나에게 날아온 적인성 검사 결과지는 '왕국의 괴물’이라는 임명장 이지 않은가? 나는 '교대'라는 왕국의 괴물이다. 왕국의 이단아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벌이지 모르는 동시에 사회의 존속을 위해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괴물이라는 낙인에 대해 전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핀을 든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풍선 장난감이다."
미국의 작가이자 언론인인 '진 파울러(Gene Flower)'는 말한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핀을 든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장난감이다." 펑 터지는 일은 시간문제이다. 누군가는 성공이란 것이 타인의 시기, 자신의 불안에 정비례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해석한다.
남들에게 비춰지는 성공이란 게 순전히 제 실력이라면 좋겠지마는 이것의 몸집이 커 보이는 건 약간의 환상 또한 가미됐기 때문이다. 풍선 왕국에서의 적대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질문'이란 그것이 핀이 되든, 칼이 되든 풍선을 터뜨려 그 이면을 보게 한다. '사랑', '믿음 ', '행복', '순수'와 같은 풍선의 이면을 말이다.
나는 허상의 파괴자이자, ‘교대'라는 왕국의 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