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껏 실패하기
- 코로나 학번
대2병은 코로나로 인해 1,2학년 생활을 제대로 못해본 대학생들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인갑다. 1학년 시절, 계속 미뤄지는 대면수업으로 인해 11월에야 처음 학교에 갔다. 누군가가 얼음같은 손으로 내 등을 쓸어버리는 듯이 쌀쌀한 날씨였지마는 설렘 살짝 섞인 새내기들을 움츠려들게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때놓친 새내기들을 맞이 하는 춘천(春川), 7일이지마는 그곳에서 스스로의 몸을 따뜻하게 했었다.
코로나와 함께 시작한 학교 생활, 그 긴터널을 빠져나올 때쯤, 사람들은 이제 우리를 3학년이라 부른다. 1학년 7주일 2학년 6주 학교에 직접 갔던 시간이다. 아직 못해본 것도 많고, 건물 이름도 모르는 이 '미개봉 중고' 대학생에게도 대2병을 피해갈순 없나보다.
- 딜레마
9개의 질문지는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현재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이 있는가?" 만약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No'라는 단정이거나 이거나 'Umm..' 과 같은 망설임이라면 무기력함에 빠지기 일쑤이다. 자신의 길이라고 함은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왔고, 또 앞으로 걸어갈 길 모두를 통칭할테다. 이미 자신의 정체성이 된지 오래인 이 길, 이 길을 부정한다는 건 내가 걸어왔던 길에 스스로 돌을 던지는 꼴이지 않겠는가? 자신의 길에 대한 배반이란 새찬 비 속에서 우산을 쥔 손을 놓지 못하는 한 사람과 같다. 당장은 시원하겠지만 다음날 오한으로 벌벌떨게 될 자신에 대한 생각은 우산 쥔 손을 더 꽉 움켜지게 만든다.
누구나 자신의 일(공부, 직업)에 대해 두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살아간다. 학교나 직장에선 적문적으로 보이기 위해 누구보다도 진지한 얼굴을, 친구들과의 모임에선 '이 길이 나에게 맞는지'와 같은 회의에 가득찬 얼굴을 가진 채. 사실 '충실함의 얼굴'과 '배반의 얼굴' 두 얼굴 모두 우리의 얼굴이다. 역사의 등장과 함께 많은 이들이 이 딜레마에 부딛혔지만, 딜레마에 대한 속시원한 해결책으로 우리의 마음을 편안히 해줌은 꾸준히 실패해왔음이 분명하다.
딜레마에 대응하는 최선의 행위는 그것의 양뿔을 쥐고 끊임없이 흔드는 것이다. 그러다 제 손의 힘이 빠져 손을 놓게 된다면 두 얼굴중 하나의 얼굴만이 남게 될 것이고, 그 얼굴이라 함은 현실에 타협하는 얼굴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실패 직전을 등에 이고 힘껏 실패하기
비록 우리의 고뇌의 얼굴하는 두 얼굴 중 타협하는 얼굴만이 남는다 할지라도, '실패 작전을 등에 이고 힘껏 실패하기' 이것이 딜레마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일 터이다.
"덕선아.. 아빠도 덕선이한테 하나 줄 것이 있는디."
<응답하라 1988>의 성동일이라는 익살스러운 캐릭터도 결국 아빠 성동일이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니까..서툴다"로 이어지는 대화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인생은 리허설 없는 연극무대이다.
모두가 이번생은 처음인지라 많은 것이 서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다 보니 ○○'의 ○○속에 나를 정의 하는 모든 것을 대입해도 말이 되는게 아닐까? '어쩌다 보니 교대', '어쩌다 보니 브런치 작가'이런 식으로 말이다. 인생 자체가 처음인지라 부족한 것들 투성이이자 남들의 비웃음 살 요소 천지인게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어쩌다 보니 ○○', 설계도 없는 건축물 마냥 당장에 닥쳐오는 것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으리라. 이 쌓여가는 건축물은 아마도 완성도 있는 무언가가 아닌, 게임이 서툰 어린아이의 테트리스에 더 가까울 것이다. 군데 군데 구멍은 도드라지고 대충 대충 넘어간 그런 테트리스 말이다. 사실 성공한 경험보단 실패한 경험이 셀 수 없이 많다. 수능만 보더라도 '가위바위보'도 아닌데 삼세판을 거듭한 끝에 승부를 냈으니깐 말이다.
학교 동기와 같이 선거 회장 선거에 러닝메이트로 출마한 적이 있다. 어린 날의 치기였던 건지,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출마한 우리들... 한가지 믿는 구석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결심 아니었을까? 그래도 구색은 갖추기 위해 남들이 한다는 건 따라해봐야했다. 인스타그램 계정도 만들어 여러 게시물도 올리고, 장소도 빌려 영상 기획부터 편집까지.. 무엇에 홀린 듯양 열심히 했다.
"굳이?"
러닝메이트는 우리들의 과한 열정이 웃음거리로 전락할까 걱정스러웠나 보다. 물론 나 또한 그런 걱정에서 자유롭진 못하였지만 내가 느끼는 그대로를 전화기 넘어로 전달하기로 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구경거리의 성격을 띄고 있는 건 맞아. 그런데 우리한테 다른 선택지가 없는걸..? 우리에게 당장은 거창한 무언가와 구경거리 사이에서 선택할 권리가 없어. 단지 우리에게 닥친 선택지는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를 제공 함'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이 두가지밖에 없는걸." 기꺼이 구경거리가 됨이라 함은 당장의 선거승리도 물론 있었으리라. 하지만 진정한 목표는 기존의 한팀씩만 출마하는 관행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캠페인적 성격 또한 있었다. 누가 봐도 불리한 게임, 그 속에서 '실패 작전을 이고 힘껏 실패함'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