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6온스.

삐그덕 술먹은 다음날, 숙취가 괴로워.

by 이규만

눈을 떴다. 잘 정돈된 깨끗한 방안이었다. 처음에는 자취방에서 일어나는 줄 알고 지혜를 찾았다. 그런데 둘러보니 방도 훨씬 넓었고 전혀 한 번도 들어와 보지 못한 이상한 방이었다. 습기 찬 곰팡내도 풍기고 좀약같이 암모니아 냄새도 섞여서 났다.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방안에 짐이라고는 옷 장하나와 그 옆에 겨울 코트가 여러 개 걸린 행거와 내가 누워있는 침대가 전부였다. 대체 여기가 어딜까. 납치라도 당한 것이 아닌가. 불안이 엄습해 왔다. 일어나서 핸드백을 찾았다. 침대 옆에 간이 대에 바로 보여 얼른 집어 백안을 열어 보았다. 휴대전화와 지갑, 화장품이 그대로였다. 손거울을 들어 얼굴을 보니 엉망이었다. 화장도 지우지 못하고 그대로 잠들어 버린 것이다.

갑자기 뒷골이 땅기고 어지러웠다. 머리를 만지다가 내가 어제 사케주점 사쿠라테이엔에서 성복과 일연과 미라를 만났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모금씩 삼키던 뜨거운 술과 미라와의 대화 -그건 지독한 문학 강연이었다. -가 서서히 스쳐 가면서 한 장면씩 펼쳐졌다. 갑자기 일연이 튀어나와 이차를 가자고 하는 순간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담부터는 모든 것이 흰 백지상태였다. 도통 떠오르지를 않았다. 필름이 끊긴 것이다. 아, 이럴 수가! 그렇다면 여기는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의 집? 누구 집일까? 미라? 일연? 아니면 성복? 여기가 어디이고 누구의 집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또한 내가 왜 어째서 이런 곳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났는지는 둘째 문제이다. 거울을 보고 나니 이 몰골을 누가 볼까 두려웠다. 더군다나 남자 앞에서는. 혹여라도 일연이나 성복의 집이라면 더욱 곤란하다. 바로 방문을 빠끔히 열고 욕탕으로 총총걸음으로 재빠르게 들어갔다. 내가 이런 모습일 거라고는 도저히 상상조차 못 할 것이다. 아침에 얼굴을 맞대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너무나 처참하다. 아무래도 나는 영락없는 여자인가 보다. 남자 보는 시선이 두려운 거 보니.

욕탕은 지혜랑 같이 쓰던 자취방보다 훨씬 넓었고 수납장에 수건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고 세면도구는 깔끔한 티가 났다. 다르긴 달랐다. 모르긴 몰라도 나를 여기 데리고 온 후에 보여주기 위해 쓰러져 자는 동안 일부러 말끔하게 정리한 것은 아닐 거였다. 평소 생활이 결벽증이 묻어 나올 만큼 깔끔인 성격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리고 수납장 바로 아래에 방수면도기가 있는 것을 보고 이제 어렴풋하게 누구의 집인지 감이 잡혔다. 성복이다. 바로 그일 것이다. 성복의 집이 맞을 것이다. 왜 나는 그라고 확신하는 걸까? 두 번 만난 것이 전부인데.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성품이 욕실의 정리 상태로 연결이 되고 고스란히 전해져 확신하게 만들어 주었다. 술에 취한 나를 부축해서 데려온 것이 바로 그 라니. 다행이다. 다행이다. 그러면서도 나에 이런 모습을 더욱 그에게는 보여주기 싫어져서 손이 빨라졌다. 혹여 성복이 아니면 어쩌지? 섣부른 기대나 예상을 하는 것이고 그걸 또 깨는 상황이 온다면 어찌할까. 모르겠다.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분명히 성복일 거야. 바로 그다. 그일 거라고.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잘 보여야 하는데 실수나 안 했나 몰라. 쏴-. 뜨거운 김이 확 올라 거울이 금방 희뿌옇게 번져버려 내 모습이 희미하게 보일 무렵이었다. 욕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윤서야. 괜찮아? 뭐 필요한 거 없어?”

맞다. 그 목소리다. 내가 예상한 대로 그가 맞았다. 성복이다. 아. 이를 어쩌나.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천연덕스럽게 대답은 해주었다.

“응. 오빠. 괜찮아. 세안만 하고 나갈게.”

“그래. 북엇국 끓여 놓았으니까, 천천히 씻고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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