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오랫동안 멈추었던 곳은 단대오거리였다.
엄마는 계속 주절주절이었다. 네가 가봤자 뾰족한 수나 있겠어. 돈 벌어서 학비 낼 정도 되면 대학 가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엄마가 계속 뭐라 하던 그래도 꿋꿋하게 가방에다 짐을 꾸렸다. 언니가 준 돈과 같이.
집을 나설 때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닉으로 온통 가슴이 벅차올랐다. 언니처럼 살지 말라는 말을 깊이 절감하고, 아로새기면서 새벽 기차를 탔다.
차창 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으로 내 긴 머리카락이 헝클어졌다. 기차가 수없이 다가오는 어둠을 갈라놓았다.
우기였다. 여름을 알리는 소낙비가 쏟아졌다. 광고지 신문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신문에 소개된 주 상권은‘성남’이었다. 신문에 날짜를 훑었다. 1993년 7월이었다. 여름은 그렇게 비로 이어졌다. 나는 곧바로 성남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서울역에서 언니 돈을 잃었을 땐 동서 분주하며 찾아보았지만 어수룩한 나를 재확인했을 따름이었다. 이번에 세 번째로 이른 곳에서는 아무 일 없이 시간만 흘렀으면! 솔직히 아버지 앞에서나 새벽 기차를 탔을 때의 그 비장했던 나의 기로는 모두 다 사라지고 이제 남은 건 천천히 늙어 비틀어진 육체일 뿐이었다. 차라리 마담의 말처럼 남자한테 몸을 맡겼더라면 지금의 나는 이렇게까지 비참하였을까. 모른다. 만약에 남자가 하자는 대로 했다면 남들 앞에서 한동안은 사모라 소리를 들으며 그런대로 있을지.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아마 며칠 사이에 흘린 내 눈물이 저 차창을 때리는 비와 비슷한 양이될 것이다. 걷잡을 수 없었다. 괜히 서러워서 울고. 내 처지가 한심해서 울고. 언니가 생각나서 울고. 엄마가 생각나서 울고. 얼마간 그렇게 울었다. 눈시울이 빨개진 얼굴이 흐릿한 빗줄기와 같이 차창으로 어리어져 두껍게 올라왔다.
비의 잔영으로 가려져 버스 안이 온통 어두웠다. 계속해서 차창에 날카롭게 빗줄기가 때렸다. 그 흐릿함 너머로 거대하고 웅장한 고가도로가 앞을 가로막았다. 비로 고가가 무너져 내려 길이 없어질 것만 같았다.
버스는 한참 동안 그곳에서 멈추어 시동만 켜 놓은 채 도로 한복판에서 갈 줄을 몰랐다. 교통 신호등이 수없이 바뀌어도 차는 좀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나는 불안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운전기사한테 다가가서 물었다.
“아저씨 왜 차가 가질 않는 거죠?”
기사는 날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낯선 도시로 찾아온 이방인을 맞이하는 눈으로 사이드미러로 간간이 나를 훑었다.
“곧 갈 겁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자리에 앉아 계셔요.”
불안했다. 과연 내가 제대로 버스를 탄 것인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를 잘 알 수가 없었다. 기사는 나의 불안한 표정을 거울로 봤나 보다.
“어디서 내리는데요?
“제2공단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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