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크리스마스 -30

20대 때의 애숙과 승동의 마지막 모습

by 이규만

도사리고 있습니다. 일도 중요하지만, 동료들끼리 잘 협조해서 이 위화(違和)를 슬기롭게 넘기도록 합시다. 나중에 시간이 되는 분들은 병원에 한 번씩 들러서 승동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으면 합니다. 다친 것도 다친 거지만, 충격이 너무 커서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라 합니다. 의사 말로는 수술 경과가 좋아서 이른 시일 내에 아물 것이라 합니다. 특히 본인 의사에 의한 거지만, 치료 기간이 최대한 짧게 진행할 수 있도록 이식수술이 아닌 봉합수술을 강력하게 의사 표명했다, 합니다. 오른손 집게손가락 끝부분이니, 불편할 것입니다. 주로 쓰는 부분이라 앞으로 여기서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여느 날과 다르게 활력 넘치고 붕붕 떠 있던 어투가 아니었다. 숙연해진 조회 시간이었다. 전녹중 계장의 끝의 말꼬리가 흐려지는데, 나도 그만 같이 울컥해서 하마터면 작업장에 동료들 앞에서 한바탕 눈물이라도 쏟을 뻔했다.


사고가 나고 만 하루가 지나고 그 흔적들을 수습하다가 데커레이션 케이크 부서에서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새로 들여온 시럽 분사기 밑으로 잘린 손가락 한 마디 부분이 나왔나 보다. 시커멓게 변색이 되어 선혈이 선명하게 남아 납작하게 압축되어 버린 끔찍한 모습이더라는. 김창식 기사가 본 걸 그대로 말해줬다. 그걸 최초로 발견한 이는 입사 며칠 안 된 마창진 사내였다. 청소하다 시럽 분사기를 들어 올리려는 찰나에 발견한 것이다. 그는 그걸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중에 승동이 형한테 돌려줄까? 김창식 기사가 화를 냈다. 야! 그걸 승동이가 봐서 뭐 하게? 괜히 괴롭기만 하지. 얼른 낚아채어 케이크를 포장하는 좋은 종이에 꼭꼭 싸서 공장 뒤편 야산에다 던졌다. 나는 그 모습을 작업장 내 창문으로 쭉 지켜보았는데 미신 같았지만 액땜하는 의식같이 성스러워 보였다. 마치 다시는 이런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바라는 것처럼.

한때는 내가 그렇게도 좋아했었고 사랑했던 남자가 이제는 너무 부담스러워졌고 이런 형편없는 몰골로 그의 얼굴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못 견디게 힘들어서 화장실에 가서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꽤 오랫동안 몰래 울었다.

박승동 씨 이번 사고로 인해 전녹중 계장은 인사고과에 반영되어 차장 진급이 보류되었습니다. -늘 위해부서에 처박혀 전녹중 계장 보고만 들었던 건지, 아니면 일하는 직원들에게 부담 안 주려고 그랬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장에 나타나지 않던 부장이 와서 한 말이었다. 김창식 기사는 재입사라서 제외되고, 그 외의 기사급들은 기사에서 반장으로 반장급들은 주임급으로 승진발령이 나고 전녹중 계장은 아직 심사 대기 중이었는데 이 사고가 터진 겁니다. 그렇다고, 전 계장이 그만한 일에 낙심하고 내색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그도 한 인간으로 처한 운명으로 엮어진 고리를 대단히 아쉬워했다. 이번 연애사에는 약간이라도 관여하여 승동에게 어드바이스 했더라면 이런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오지 않았을 것인데. 슬쩍 내게 내비쳤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마실 적에나 혹은 점심시간 작업장에서 내가 주문장을 볼 때 잠깐 스쳐 가듯 그는 말했었다. 그는 눈치챘다. 예전에 나를 따르고 좋아하던 남자들을 쳐다볼 때의 눈빛과 승동을 바라볼 때의 눈빛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병문안 가야지. 네가 가면 위로가 될 거야.”

“모르겠어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자 가면 모양새가 이상하니까 모두 갈 때 같이 가도록 해.”

“…….”

내가 병문안을 가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강압에 의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동료들 눈치를 보고 피해의식 같은 것에 서로 잡혔다. 굳이 꼭 행동하는 것에 제약을 많이 받고 이 사람 저 사람 말에 크게 흔들리거나 동조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가 손가락을 다친 것을 꼭 나 때문에 다친 거라고 누군가 떠들어 대면 심히 나도 괴로운 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가 그간 몇 개월 행동거지들에 대해서 특히 불안해하던 터였다. 꼭 뭔가 일이 터질 거 같은 느낌을 의외로 많이 받아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네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애숙이도 왔어.”

여러 이들 틈바구니에 끼여 병문안 갔었을 때 한 김창식 기사의 첫마디였다. 네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네가 그렇게도 사랑하던……, 그리고 흰 유니폼이 아닌 병원 이름이 들어가 있는 환자복 차림에다 다친 집게손가락에는 손가락 몇 개를 합친 것 같은 두께로 붕대가 칭칭 감겨 있다. 표정은 금방 눈물이라도 그렁그렁 쏟아 흘릴 거 같이 심각한 표정이었다. 민낯이 초라했다.

“야! 애숙이가 왔는데, 뭐라고 한마디 해야 할 거 아냐?”

“그래요. 오빠. 애숙 언니한테 한마디만 하세요.”

“형. 뭐 해? 어? 애숙 씨 뭐냐? 사랑한다고 해. 하하….”

저마다 이구동성으로 한 마디씩 해댔다. 그래요. 좋아한다, 말하라니까. 사랑해, 애숙아. 해보라고. 특히 나와 승동의 징검다리 같은 역할을 해왔던 상준은 그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렇게 병문안을 주도하고 나선 것도 그였다. 그는 많은 역할 해왔다. 앞으로도 그는 승동을 외면하지 않고 곁을 지켜 줄 우정이 있고 의리 있는 남자로 보였다.

계속 안 보려 해도 힐끗힐끗 나와 눈을 맞추려는 승동의 눈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정말 그가 나를 위해 그 한마디 해주었더라면 의사표시를 분명히 했었을까. 거기서 바로 울음보를 터뜨리거나 시인한다, 고개를 숙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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