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크리스마스 -29

승동의 애숙을 향한 무분별한 애정공세, 그리고 작업장내에서 안전사고.

by 이규만

승동도 나와 똑같은 마음으로 좋아한 것을 곁에서 느꼈지만 서로 어설펐고 동료들 눈치를 너무 살폈다. 남들 보는 눈이 어떻든, 서로가 눈치로 느꼈으면 전혀 개의치 않을 일이었다. 직접적으로 떠벌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도 내가 좋아하는 느낌을 분명 받았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소문이 좀 나더라도 그는 성실했고 근태에 있어서만은 한 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떠들썩대겠지만 그런가 보다, 지나쳤을지 모른다. 그건 순전히 내 생각일 뿐이고 그의 행동들을 하나하나 돌이 켜며 아쉬움을 표한 넋두리였다.


얼마 안 있어 그가 여자 기숙사까지 찾아와 진숙을 통해 나를 만나자고 하는 걸 전해 들었다. 모질게 마음먹었다. 더 이상 그와는 만날 일이 없을 거라 일러두었다. 진숙이 걱정을 해도 별다른 마음의 동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저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돌아가라고 해. 방문 틈으로 진숙이 그와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이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었다. 그는 포기하고 돌아갔다.

한데 며칠 후에 그게 포기가 아님을 알았다. 그가 기숙사에 세탁기가 없는 걸 누구한테 들었는지 중고 세탁기를 들이밀었다. 참 어처구니없게 여러 다른 여자애들한테 그 몰골을 보여줘서 너무도 창피했다. 중고 세탁기는 그가 직접 들고 온 거는 아니고 중고 점에서 남자 한 명이 들고 왔다. 중고상 남자 직원은 비지땀을 흘리면서 중간에 서서 눈치만 봤다. 직원이 무슨 고생이야. 불쌍해 죽겠네. 승동은 계속 여자 기숙사 욕탕에 설치하라고 하고 나는 버티고 서서 되가져가라 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가운데서 그 무거운 세탁기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통에 들고 온 남자만 죽을 고생을 했다. 결국에는 내 고집을 못 이겨냈다. 세탁기 들고 가죠. 남자는 세탁기를 짊어지고 뒤뚱거렸다. 나 참. 이게 뭐 한 짓입니까? 이렇게 고생시켰으니 세탁기값은 못 돌려줍니다.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쳐져서 뒤돌아 가는 승동의 어깨는 보기에도 딱했다. 그도 나에게 애정 공세를 무분별하게 퍼부었던 다른 남자들처럼 전철을 똑같이 돼 밟아 갔다. 그렇지만 어이없었고 당당하지 못했다.

이제 나의 사랑은 끝났다. 모진 사랑의 결말은 여기까지라고. 그토록 추앙하고 바라보았던 사랑을 말하기에는 숨 가쁘고 안타까웠다. 이제 그는 나의 우상이 아니었다. 열병을 앓고 날 독하게 괴롭히고 애처롭게 바라보던 그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지나가던 소낙비같이 스쳐 가던 무수한 인연의 한 타래이고 나는 그에 포함한 우연한 한 굴레였다. 흔히들 말하는 사랑의 연적으로 이르지도 못했고 오히려 적기에 이르러했을 때는 순식간에 깨진 유리 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그가 다가올 때는 지저분하고 추악해져 더 이상의 깊은 아량이나 너그러움은 존재하지 않았다. 단칼에 베이어낸 조각물처럼 그를 멀리하고 경계했다. 이제는 그와는 아무 관련조차 없고 정말 작업장에서 마주치는 일조차도 진절머리 났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한때는 너무 좋아서 그가 없는 P 크루아상이 삭막하기 이를 데 없을 정도였는데. 늘 바라보면 반대편에 서 있던 남자. 그 남자.

이제는 싫다. 내가 어디론가 가버리고 그도 속히 떠나서 나와는 마주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가슴 애타게 바라보는 대상이 지저분하게 변모하고 말았다. 변질하여 속된 부유물로 내 곁에서 맴돌 때는 지난날에 날 좋아한다, 떠들어 대던 그들보다 더 그를 부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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