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공장의 그을음 매거진과 브런치북 종합 집필후기
모집 광고를 보고 생산직은 그렇고 경비로 들어갈 작정이었다. 생산직이랑 같이 모집하는 광고였다. 십 년 전 그만둔 회사에 재입사하러 찾아가다니. 엄청난 감정 격랑에 휩싸였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그분들이 아직도 계실까. 아니면 그만두고 몇 안 될까. 이런 식으로 거길 찾기는 싫었다. 나의 소설이 인정받고 어떻게라도 연락이 돼서 만나면 모를까. 이런 식의 만남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또 입사하면 세 번째인가, 네 번째 재입사였다. 그전의 재입사는 같이 일했던 전 녹중 계장의 배려였다.
사고였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절망하게 한 사건이었다. 오른손 쪽 집게손가락이 시럽 분사기에 깔려 손톱 부위가 잘려 나갔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다. 내가 왜 전 애숙이라는 여자 하나 때문에 멋대가리 없이 애증과 집착으로 매달렸을까? 소설을 쓸 때 그 사건이 애숙 때문에 생긴 거처럼 꾸미기 바빴다. 애숙이 본인이 그 내막을 듣는다면 참 어이없고 황당해야 할 이야기다.
그 일로 인해 병원에서 두어 달 정도 입원했었다. 치료가 끝나 어느 정도 회복되어 공장에서 일했다.
물청소하다 앞으로 그대로 넘어지는 사고로 정 중앙의 앞니가 부러지고 말았다. 신축 건물로 바닥재가 우레탄으로 마감한 거라 농구장 코트같이 매끄러운 상태였다. 거기다가 청소를 한다고 물을 뿌려 겨울에 스케이트장같이 미끄러웠다. 서서히 걷지 않으면 금방 넘어질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청소를 돕겠다고 밀대로 물을 밀어내다 넘어졌다. 밀대를 붙잡고 바닥에 손을 지지할 것 없이 앞으로 그대로 바닥에 부딪쳤다. 그 충격으로 정중앙 앞니 하나가 부러졌다. 옆에 이를 본 동료는 안타까워하며 놀란 눈치였다. 다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그래. 그래도 그나마 넘어진 것이 앞으로 꼬꾸라진 것이 다행이야. 그 상태로 뒤로 넘어갔으면 끝장났을걸. 뇌에 큰 충격을 받아 반신불수가 되었을 수도 있어.
이 글도 쓰지 못할 상태였을까. 치과에 왔다 갔다가 하며 굉장한 후유증으로 점철 대더니 정신적으로 그로기상태였다. 나 자신을 스스로 학대하는 정도까지 이르렀다. 일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자존감마저 무너졌다. 곧바로 김종필 반장한테 다가섰다. 그만두겠습니다. 전녹중 계장한테로 불려 갔다. 그는 나를 어르고 설득했다. 듣지 않았다.
두어 달 집에 있으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몹시 힘든 상태였고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웠다. 여기저기 일을 쫓아다녀 보았지만 내 적성에 맞는 일이 없었다. 막노동일도 하루 이틀 정도 하다 힘들어서 며칠 쉬었다. 알아본다고 2 공단 부근 만두 공장에 들어갔다가 두 시간 일하다, 도망쳐 나왔다.
낯설었다. 그 환경이나 분위기가 안 맞았다. 그야말로 처참할 지경이었다.
마음을 가다듬었다. 여러 번 생각했었다. 내 인생의 막다른 점이 여기일까.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용기를 내어 전녹중 계장한테 전화했다. 이력서와 등본을 준비해 와. 그는 안 된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일할 수 있으면 와라. 정말 고마웠고 학교 다닐 때 담임선생님같이 푸근하게 느껴졌다. 그는 나를 처음 상태로 재입사를 시켜준 것이 아니라 월급도 경력사원 그대로 인정하여 일하게 해 주었다. 말 그대로 파격적인 대우였다. 예전 그대로 이어서 좋았다.
다들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온 거처럼 반겨 주었다. 애숙도 잠깐은 반가워했으나 곧 눈빛이 달라진 것을 대번 느꼈다. 그녀에게 많은 심경의 변화가 온 것을 직감했다. 같이 술을 마시기 위해 만나는 일이 절대 없었다. 기억이 희미하긴 한데 나랑 같이 술을 마시고 한 일들처럼, 그동안 몇몇 동료들과 술자리 한 것들을 볼모로 해서 사내들이 그녀를 가만히 놔둘 리 없기 때문이리라.
갖가지 억측이 난무하고 애숙의 명성은 그야말로 자자했다. 파리크라상을 통틀어 그런 뛰어난 미모를 가진 여자를 흠모한다는 거는 남자들에게는 크나큰 영광이며 행복이었다. 그리고 그중에 나도 한 사람이었다.
연애만큼은 시들해졌고 또다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휩싸였다. 서른이 되기 전에 무언가를 이루어야겠다는 강박관념(强迫觀念)이 서서히 고개를 들 때였다. 재입사하고 나서 한 이년 정도는 일한 거 같았는데 이대로 공장에서만 일하다가는 시간도 없을뿐더러 항상 글을 쓰고 싶던 열망을 그대로 접기에는 나는 너무 젊었고 현실에 대한 불만은 그곳 공장에서 나를 가두지를 못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지고 가다듬어 겨우 용기 내 들어간 공장을 쉽게 빠져나오다니. 친구결혼식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결혼식은 토요일이었고, 나는 아직도 꿈에 젖어 있었다. 내 변화된 모습을 친구나 아는 지인들에게 보여줘야 하고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해야 하는데 적당히 꾸밀 줄도 몰랐다.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게 창피한 건지, 아직 크게 변화되지 않고 사회에서 인정받아 일원으로 있는 못한 몰지각함을 친구들과 지인들이 비웃을까, 두려웠던 것인지. 일단은 공장을 나오고 말았다.
그만두는 방식이 단순했다. 출근을 안 하면 바로 끝이었다. 퇴직 처리도 그쪽에서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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