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7. 1998~2000년(17~19세)

by 나를찾는나

여고. 하면 뭔가 예쁘고 아기자기 할꺼 같지만

이곳은 그야말로 다양한 인간 군상이 어우러지는 사회다

되려 이성에 대한 긴장감이 없으니

생긴대로의 나를 고스란히 드러낼수 있는 환경인거 같기도 하다



엄마는 엄청나게 큰 교복을 물려받아 왔다

비록 당시 내가 통통했다고 해도

키가 상당히 작고 왜소한 편이었는데

물려받은 옷은 170 이상의 거구가 입었던 것 처럼

정말 큰 사이즈였다

근데 또 나는 그걸 군말없이 받아 3년 내내 입었다



그때의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나를 참 예뻐했을 듯 하다

나는 그야말로 말 잘듣는 범생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나는 사춘기를 겪지 않았다


나는 그때 내 친구들이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들,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

내가 누군인지, 뭐가 되고 싶은지,

공부는 왜 해야 하는 건지에 대해

고민하거나 고뇌하지 않았다

내 욕구, 내 바램, 내 희망 같은 것들을 고민하거나

감정들을 표현하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살았었는지도 모른다


교복 허리가 너무 커서 치마를 3번 4번 말아 입었다

그걸 또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깔깔 웃었다

어떻게 보면 성격이 좋은 거라고도 할 수 있지만

지금 내 시각에서는 그런 내 모습은 한켠으로 안타깝기도 하다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나는 공부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특목고로 잘 하는 친구들이 대거 빠지면서

뱀의 머리가 되었던 거 같다는 생각도 가끔 해본다


뭐. 아무래면 어떤가

반에서 1~2등을 하기 시작하면서

자신감이 생겼고 덕분에 공부에 탄력이 붙었다


20년 가까이를 어정쩡한 포지션으로 살아왔기에

아마도 나에게는 그게 처음으로

그럴듯한 사회적 성취를 이룬 듯한 느낌이었을꺼다


그래서 공부 자체를 재미있게 하기보다는

등수와 점수에 목을 매기 시작했다

달을 봐야하는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기 시작한 셈이다


반에서 공부잘하는 친구 하나를 찍고

혼자 경쟁심에 활활 불타올랐다

그 친구보다 잘 하는 게 그때의 내 목표였다


그러면서 겉으로 쿨한척은 또 혼자 다했다

시험 공부를 열심히 해놓고

시험 당일에는 친구들과 장난도 치고 히득히득 놀았다


친구들은 저렇게 노는 데도

공부 잘 하는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대신 시험 시작 15분 전쯤부터는

주변에 공부 못하는 친구들을 다 불러보아서

예상 문제 몇 문제와 답을 알려주며

바로 외우라고 시켰다


그리고 거의 그 문제들은 바로 시험에 나왔기에

친구들은 나를 참 좋아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건 내 장점인 거 같다

잘 하고 싶은 마음과 욕심은 늘 있고

그게 항상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어준다

어떤 일을 앞두면 상당히 걱정하고 긴장하지만

그 긴장과 부담의 무게를

스스로 오래 짊어지고 있지는 않는다

지금도 이건 내가 잘 하는 부분 중에 하나다





대망의 고3이 되면서 나는 잠을 확 줄였다

하루에 4시간을 자고 공부했다


한번은 수업시간에 깜빡 잠들어 내리 2시간을 잤는데

깨어나서 나는 하루종일 자책했다

공부할 시간이 아까워서 등하교길에는 뛰어다녔다


새벽 2시까지 공부하고

6시면 일어나 학교에 가서

하루 종일 공부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대학을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어떤 맹목적인 믿음이 있었다


인생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법을

그 시절 나는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분들에게는 입시가 중요한 우선순위였을테니.



내신 성적이 좋았기에

여름이 갓 지나서 괜찮은 대학에 합격했다

합격 통보를 받고 친구들은 모두 부러워했다


담임선생님이나 부모님은

니가 갈 대학은 아니라고 하셨다

나도 물론 그렇게 생각했다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시절 나는 참 열심히 했다

후회없이 열심히 해본 경험.

그거 하나가 나 스스로에게 부여한

어떤 합격증 같은 거였다







수능 날. 늦잠을 잤다

엄마 꿈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나타나서

일어나라고 몇번을 말씀하고 나서야

우리 가족은 겨우 일어났다


허둥지둥 시험장에 들어가서

1교시 시험 직전에야 숨을 돌렸다

그덕분에 1교시를 망했다

한동안 이걸 수능을 못본 핑계로 썼었더랬지..

아, 시험 중간에 갑자기 생리가 터졌다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모두 그냥 내 실력이었다

뭐, 시험 한번으로 모든 걸 결정하는 게

말이 되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시험은 모두에게 공정하다

주관성이 배제된 정해진 룰에서 평가한다는 점에서

시험은 가장 투명한 측정 도구다


그래서 예전의 내가 말했던

하필이면 늦잠을 자서, 운이 나빴다던지..

하는 것들은 모두 핑계고 자기 위안이다


시험을 망했다고 하는 것도 주관적이다

나의 시험결과는 평소와 비슷했다

여전히 잘 봤다는 이야기다

손에 꼽게 틀렸다.. 한 서너문제 틀렸던가 ?


그럼에도 그 해의 수능은 물수능이었다

엄청나게 고득점자가 많았다

가채점을 한 날 웃었고

다음날 학교에 가서 상황 파악을 한뒤에는

대성통곡을 했다


수능을 보기전 합격했던,

내가 갈 만한 대학이 아닌 곳에 들어갈 점수였다

그곳이 딱 내가 가야했던 학교였다


재수를 하긴 싫었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나온 결과가 이거면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참 욕심이 적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그냥 공부 1년 더 해보지

물론 대학이 인생에서 엄청 중요한 건 아니지만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긴 한다


대학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아니 어떤 사회던 그 사람의 기본을 보여주는

명찰같은 거다

내가 조금 더 좋은 대학을 나왔더라면

더 좋았겠단 생각은 문득 해본다





수능이 끝나고

머리에 매직을 하고 오거나

쌍수를 하고 오는 애들이 부지기수였다


내 베프는 쌍수에 코까지 하고 나타나서

나를 기함하게 만들었다

재수를 한다는 것이 성형부터 하고 나타나서

나는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뭘 하고 싶은지 아무 생각이 없던 나도

미용실에서 가서 염색을 했다

빨간 머리로 염색을 했다

왜 하필 빨간색이었을까

그리고 왜 미용실 선생님은 빨간색으로 하라고 내버려뒀을까

상당히 원망스러운 부분이다



엄마가 너도 쌍수를 하겠냐고 물었을때도

왜 거절했나 싶다

그냥 한번 해볼껄..

이제는 별로 하고 싶지도 않거니와

어차피 나이 들면 눈이 쳐져서

안검하수를 해야하니..

언젠가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고 3 시절이었지만

내게 참 감사한 기억은

매일 아침 엄마가 나를 꼭 안아서 깨워주셨던 것과

매일 밤 야식을 독서실로 가져다주셨던 것.


그때도 지금도

엄마는 나를 믿었고

항상 뒤에서 나를 바라봐주는 든든한 분이셨다


그래서 나는 맨땅에서 요이땅 하고 달려서

뒤를 안돌아보고 앞으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었다

비록 중간에 절어서 당시 내가 원하는 곳까지는 못갔지만 그게 내 인생의 끝이 아니란 걸 지금도 알고

아마도 그때도 알지 않았을까?

그래서 후회없이 재수는 안했던 건지도 모른다


부모의 믿음은,

그리고 누군가의 믿음은

그 사람을 안전하게 느끼게 하고

그 안전함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된다


나도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

또 누군가에게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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