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생활은 내 예상과는 정 반대였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게 다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한 낭만과 열정,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고 이룰 수 있는 건 거짓이었다
대학은 말그대로 어른의 작은 관문이었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가 직접 꾸려나가는 삶이라는 이야기였다
학생 시절에 부모님이,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순순히 따르며 오랜 기간을 살았던 나이기에
스스로 선택하고 꾸려가는 방법은
전혀 훈련되어있지 않았다
그야 말로 시간은 많은데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전공은 아빠가 전망이 좋다는 곳에 맞춰
선택했기에 고등학교 시절 배우던 과목 중 하나 같은
아무 느낌도 없는 과목이었다
나는 그야말로 방황을 시작했다
첫 해에는 모든 것이 재미 없고 낯설었다
다른 친구들은 미팅도 하고 술도 마시고 뭔가를 했다
나는 몇번 미팅도 끌려나가고
후덕한 복학생 오빠에게 에프터도 받아봤지만
내가 꿈꾸던 연애는 오지 않았다
방에 늘어져 잠을 자거나
수업을 듣기 싫어 째고 집에 오거나
새벽까지 학교 커뮤니티의 글을 읽으며
노골적인 수위의 내용에 충격에 휩싸이거나 하는
그야말로 시간을 허송세월 보내는 나날들을 보냈다
하루는 전공수업을 듣기 싫어
집에 가는데 길에서 교수님을 마주쳤다
어딜 가냐는 교수님의 말에
배가 너무 아프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교수님은 안쓰러워하시면서
출석을 한 것으로 처리를 해주셨다
그리고 그 날 이후
그 수업만큼은 그 이후로 한번도 빠지질 않았다
그리고 덕분에 전공에 조금은 관심을 갖게 되기도 했다
목표가 없는 삶은 고역이었다
시간은 많은데 꼭 해야 하는 일이 없으니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어찌보면 우리나라 입시의 폐해가 아닐까 싶다
내가 스스로 내 삶을 꾸려가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정해진 매뉴얼대로 무비판, 무차별적으로 따라가게 하는 것
그래서 정작 스스로 서야 하는 시점에는
나같은 부적응자들이 나올 수 밖에..
사회를 모르는 어리버리한 대학생은
사기꾼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학교 앞에서 컴퓨터 학원인지, 영어 잡지였는지
판촉하는 분들한테 붙잡혀서 멍하니 설명을 듣다가
6개월치인가를 결제하겠다고 싸인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엄마가 부랴부랴 뒷수습을 해주신 기억도 난다
그만큼 나는 어리고 순박했다
사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한다
물론 지금은 이런 상황에 당하진 않겠지만
만약에 당한다면... 침착하고 어른스럽게 대응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아직도 나는 내가 생각하는 진짜 어른이 맞는지
가끔씩 자신이 없어진다
그래서 아이들을 키우는 지금의 나는
최대한 아이들이 스스로 서는 법을 알게
키워야겠구나 하고 느낀다
나 같이 방황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 삶을 꾸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던 중
과외가 들어왔다
같은 동 라인에 사는 이웃의
중학생 여자아이의 수학 과외였다
대학가면 용돈을 안주겠다는
부모님의 선포가 있었기에 알바가 필요하던 찰라였다
대학생 과외는 그야말로 꿀빠는 과외다
교수법도 제대로 모르는 대학 쪼짜인 것을
그저 입시 성적이 괜찮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돈을 주고 자식을 맡기는 부모가 꽤 많다
안할 이유가 없었다
다행히 착실한 학생을 만났다
거의 같이 공부하다 싶이 하며 가르쳤다
같이 답을 보며 연구하고 문제풀이를 했다
그러다가 그 학생이 친구를 데려왔다
셋이 되니 부담이 되려 덜해졌다
서로를 경쟁상대 삼아 가르치게 하기도 했다
돌아보면
나 같은 날라리 대학생을
3년이나 써주셨던 학부모님께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하다
잘 따라와준 두 학생들에게도 감사하다
과외비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인당 30만원. 지금은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그 당시는 엄청 큰 돈이었다
30만원을 받으면 5만원 남기고
몽땅 쇼핑에 썻다
동대문에 가서 싸구려 질 안좋은 옷들을
잔뜩 샀다
화려한 레이스, 리본, 핑크, 노랑, 연두
나는 그야말로 패션테러리스트가 입을 만한 것들만
골라서 샀고
엄마는 빨래를 할때마다 엄청난 물빠짐에
욕을 엄청나게 해대셨다
나는 대학에 가면 빠진다던 살도 그대로 안고 살고 있었고
그 와중에 패션까지 테러리스트였으니
남자친구가 생길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 그렇게 옷을 많이 사고
많이 입어본 덕분에
지금 훈련된 패션으로 살고 있는거 같다
타고난 감각은 없지만
어떤 게 나한테 잘 어울리는 지는 알게 되서
여전히 주말에는 거지처럼 입지만
출근하는 주중에는 꽤 괜찮게 차려입고
옷 잘입는다는 소리도 가~~아끔 듣는다
뭐든지 어떤 시기이든 남는 건 있는거 같다
과외를 하면서 학생들이 계속 소개로 들어왔다
초등 남자아이를 가르치기도 하고
하루에 과외를 2~3탕씩 뛰면서
돈이 벌렸다
돈이 벌리니 돈 쓰는 재미도 있었지만
목표가 생겼다
유럽여행을 가야겠다는.
친구들은 부모님이 어학연수나 배낭여행을 보내주셨는데
우리 부모님은 대학가면 등록금만 내주겠다던 분들이셨기에
말을 꺼낼수가 없었다
그래서 열심히 돈을 모아 유럽여행도 가고
기회가 되면 연수도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거 같다
그 시점에는 과외도 하고
학교 생활도 익숙해지고 돈도 모으고
뭘 해야할지 서서히 알고 움직였던 거 같다
기업에서 하는 대학생 탐방단에도 지원하고
덕분에 해외에 다녀오기도 하고
아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모임도 많아지면서
사는 게 좀 더 재미있어졌다
내가 짝사랑하는 대상도 생기고
나를 좋아해주는 몇몇과 데이트(?)도 해보고
나름 다시 나는 내 삶의 궤도를 찾는 거 같이 느껴졌다
그래도 여전히 스스로 꾸려가는 첫 삶이었기에
너무나 어려웠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주 많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나는 내 길을 찾기 위해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고
마냥 시간을 허송하던 시절에서
서서히 빠져나왔다
돌이켜보면 다행이다 싶다
정신적으로 아이에서 어른으로 크게 점프하던
큰 도약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