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들은 상당히 외롭다. 일하느라 정신없이 바쁘기만 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건 적응하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같은 길을 매일 다니다 보면 거의 모든 건물들과 건물 구석구석을 외워 버린다. 그리고 온라인 쇼핑도 하던 사람이 계속하기 때문에 늘 봤던 길 아는 길을 돌아다닌다. 그래서 아무리 복잡하게 생긴 길이라도 며칠 지나지 않아 모두 워와 버린다. 오죽하면 나의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길치라는 능력을 극복하다 못해 서울의 꽤 많은 지역을 통째로 외우고 있다.
이렇게 같은 지역을 몇 달 동안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돌아다니다 보면 몸과 머리가 로봇처럼 변해버린다. 더 이상 일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수준이다. 인간의 적응력에 감탄을 하는 것과 동시에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새벽배송이나 한 아파트만 도는 경우에는 더하다. 그래서 일하고 있는 택배기사들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보통은 동료들과 통화를 하는데 대화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 헉..헉.. 에이씨 또 4층이야 헉헉.. 잠깐만.. 헉헉.."
" 지금 내 말 들..리ㄴ? 여기 엘레ㅂ.. 터 자꾸 끊..ㄱ네"
그룹통화를 하는 날은 아주 가관이다. 이어폰으로 들리는 숨소리는 야동이 따로 없다. 그런데도 통화를 끊지 못한다. 사실은 할 말도 별로 없다. 같은 사람과 하루에 몇 시간씩 매일 통화하다 보니 상대의 시시껄렁한 농담 패턴까지 익숙해져 버렸다.
나는 야간에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한 동안 이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온 세상이 잠든 지금 나 홀로 일하고 있는 것만 같다. 통화를 할 사람도 없기에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숨소리마저 그립다.
하지만 인간의 적응력이란 내 생각보다 훨씬 놀라웠다. 새벽배송 2년 차가 되자 나는 이것을 오히려 기회로 삼고 있다. 지금은 일하는 시간을 4교시로 나누어서 공부를 한다. 1교시는 영어, 2교시는 마음 다스리기, 3교시는 글쓰기, 4교시는 오디오 북이다. 학창 시절에 어떻게든 더 놀려고 애를 썼던 내가 지금에 와서 공부하겠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긴 하지만 어쨌든 하루가 보람차다. 그리고 이 하루는 차곡차곡 쌓여만 가고 있다.
그렇게 나는 지금 3시간짜리 영어교육 영상을 통째로 외웠고 1000편이 넘는 어느 스님의 법문을 반복해서 들었다. 오디오 북으로는 150권 이상의 책을 듣고, 지금 이 글은 밤새 뛰어다니면서 적고 있다.
사실 지금 내 삶의 만족도는 최상이다. 계단을 타니 운동이 되고 귀로는 공부를 할 수 있으며 돈도 적지 않게 번다. 무엇보다. 내 안의 어떤 지혜가 조금씩 쌓여가는 것이 만족스럽다. 나는 이 순간 진심으로 행복하다.
혼자 베실베실 웃어가면서 걸어 다니니 어쩐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날 피해서 가는 게 기분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오늘은 그만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