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왔다.
전에 살던 곳이 재개발이 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갈현동으로 오게 되었다. 오 층 짜리 아파트인데 그런대로 살만 했다. 남편은 다니던 빵집을 계속 다니고 나는 집에서 밤 까는 부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결혼 15년 차로 아이는 없고 조금 적적하지만 둘이 서로 의지하며 때론 지지고 볶았다. 아래층엔 할머니와 손자가 살고 있었고 손자는 직장을 다니는 듯했으며 할머니는 뒤뚱거리면서 자주 나갔다.
앞 집엔 삼십 중반의 총각이 살았다. 그 집엔 거의 매일 친구들이 와서 떠들어 댔다. 얼마나 욕지거리를 하며 떠드는지 듣는 내가 불쾌할 지경이었다. 남편은 직장에서 돌아오면 씻고 그냥 누웠다. 피곤하다고 누워서 온갖 심부름을 시켰다.
그날도 남편은 오자마자 씻더니 사과를 깎아오라 했다. 나는 조용히 부엌으로 가 과도로 사과를 깎는데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가만 귀 기울여 들으니 앞 집에서 나는 소리였다.
여자의 신음 소리였다. 깜짝 놀랐으나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신음 소리는 약해졌다 강해 졌다를 반복하다 이내 멈추었다. 다음 날 저녁에도 그 소리는 났고 그다음 날에도 딱 그 시간이 되면 신음은 반복되었다. 그런데 여자의 소리가 매일 바뀌었다.
앞 집 남자는 낮에는 남자와 놀고 밤에는 여자와 그 짓을 하는 돈 많은 백수 인가 싶었다. 밤이면 반복되는 앞집 남자의 성생활에 어느새 궁금증을 갖게 된 나는 어디서 저런 정력이 나올까 묘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지만 내색은 않고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부업거리가 없어 거실에 혼자 앉아 있는데 앞 집에서 여자의 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황망하면서도 예의 호기심을 가지고 신음에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약 이십 분 간 울리다 절정에 잦아들었다. 나는 몹시 부끄러우면서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용기를 내기로 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 앞집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네 앞집 사람인데요..."
문이 열렸다.
"왜 그러시죠?'
사내가 말했다. 나는
"아무리 그래도 낮에도 그 짓은 아니잖아요..."
하고 역정을 내었다.
그는 무슨 말인 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 들었어요"
내가 말하자
"뭘요?"
사내가 오히려 궁금해했다.
나는 머리를 내밀고 안을 살펴보았다. 진짜 안에는 기척이 나지 않았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나는 그 집에서 물러 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오 분쯤 후 여자의 괴성이 다시 들렸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 앞 집의 벨을 마구 눌렀다. 곧 문이 열리고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남자의 얼굴은 무슨 일이냐는 듯 태연했고 방에선 여성의 괴음이 계속 흘러나왔다. 나는 순간 모든 상황을 간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스피커를 틀어놓고 혼자 즐기는 사내'
나는 중얼거리며 저 남자를 풍기문란으로 신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고민하며 휴대폰을 들었다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