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20대, 내가 먼저 장애인복지관에 입사했고, 이듬해와 그다음 해에 그녀와 그가 들어왔다. 그렇게 우리는 그곳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사회복지사, 나는 소아재활치료를 하는 물리치료사였다. 그들은 ‘장애인 자립생활’이라는 말조차 낯설던 시절, 그 개념이 사회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앞장섰다. 제도를 알리고 현장의 기반을 다지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움직였고, 나는 치료실에서 사랑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두 사람이 있는 부서를 찾아가 장애인 이용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잠시나마 업무를 도우며 함께하기도 했다. 짧은 틈이었지만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이 좋았고 즐겁기까지 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도 서로의 일을 이해하고 응원하며, 진심 어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장애인 복지에 대한 큰 꿈과 확고한 목표 그리고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품었던 우리. 젊음이라는 이름으로 빛났던 그 시절의 추억은 언제 꺼내 먹어도 달콤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이번에는 두 사람이 나를 만나러 내려왔다. 일본에서 거주 중인 그가 투표도 할 겸 며칠 서울에 다녀간다며 연락을 해왔고, 매번 서울까지 오는 것도 부담스러웠을 텐데 이번엔 자신들이 움직이겠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며칠 전부터 마음이 들떴다. 휠체어 접근이 편한 식당과 카페를 찾아보고, 혹시 함께 걷기 좋은 공원은 없을까 하고 둘러보며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시간마저 행복했다.
나를 생각해 준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잘 알고 있지만, 운전하느라 피곤했을 그녀와 다음 날 혈액투석을 앞둔 그의 컨디션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작년,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받느라 송파에 있는 암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들도 바로 이 두 사람이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퇴근 후 먼 거리를 달려와 따뜻한 위로를 건네준 그녀와 본인도 암 환자인 몸으로 나를 찾아와 준 그. 그들의 한 걸음 한 걸음에 담긴 진심을 생각하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고마움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른다. 어쩌면 외로울 틈조차 주지 않으려는 그들의 고도화된 전략이었을지도 모른다.
연재 중인 ‘암과 함께 오늘도 맑음’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소개될 예정이라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쓴다.
어제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 글에 박 소장 얘기 써도 될까?”
“얼굴 공개도 괜찮아. 마음껏 써.”
“하긴, 검색하면 나오는 사람인데. 고마워.“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까지 함께 나눌 수 있는 두 사람과의 인연이 참 고맙다. 삶의 여러 갈래 길 위에서 서로의 곁이 되어준 이 소중한 인연을오래도록 간직하며 앞으로도 함께 걸어가려 한다.
오늘은 짧게 그를 소개한다.
다음은 ‘함께 걸음’에 실린 기사 내용 중 일부이다.
한국장애인인권상은 UN이 천명한 장애인 권리선언과 정부가 선포한 장애인인권헌장의 이념을 계승하며, 매년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에 맞춰 개최하는 시상식을 통해 수여되고 있다. 제26회 한국장애인인권상 시상식에서(24년 12월 3일) 인권실천부문은 자립생활 개념을 도입하고, 활동보조서비스 시범사업과 개인예산제 시범사업 등을 통해 사람중심계획(PCP) 기반의 장애인 개인별 욕구와 목표를 반영한 지원체계가 구축될 수 있도록 기여하는 등 장애인의 주도적인 삶과 권리보장에 공헌한 '박찬오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