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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빗속 달리기

by ligdow


6월 초에 추적검사를 마친 내 몸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특별히 아프거나 눈에 띄는 불편함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CT 조영제 부작용으로 속이 울렁거리고 입맛이 뚝 떨어졌다. 기운도 덩달아 빠졌다.

직장내시경 검사를 준비하느라 며칠간은 음식 조절을 하고, 검사 당일에는 금식도 한다. 거기에 조영제 부작용까지 겹치면, 몸은 순식간에 가벼워진다. 두 달 동안 애써 찌워놓은 체중은 이번에도 허무하게 빠져버렸다. 그래봤자 몇 백 그램이지만 나에게는 그마저도 아깝고 속상한 무게다.


이번 봄에는 오랜만에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들어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자꾸 거울을 들여다보고 남편과 아이들한테 나 얼굴 좋아보여? 살이 좀 붙는 거 같아? 매일 물어봤다. 그래서 더 아쉽고 서운했다.

늘 그렇듯 검사 후에는 한동안 회복이 더디다. 음식을 천천히 늘리고 체력을 다시 끌어올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몸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는가 싶으면 곧 다시 다음 검사 날짜가 다가온다. 어쩔 수 없지만 아쉽고 때로는 지치기도 한다.


3월에 비하면 이번에는 조금 나았는데 날이 더워지면서 기력이 더 쉽게 빠졌다. 체력은 떨어지고 마음도 그만큼 늘어졌다. 거기에 최근에는 친정 가족에 대한 글을 쓰면서 기분이 한참 가라앉았던 것 같다.

어떤 감정은 그저 잠시 꺼내어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 전체를 지배하곤 한다. 그 기억 속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일상마저 무거워졌다.


다행히 어제와 오늘, 화요일에 발행할 글을 쓰면서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게다가 오늘은 3주 만에 내린 제대로 된 비가 무더위의 열기를 씻어내 주었다. 그동안 더위 탓에 달리기를 쉬고 유산소 운동은 수영으로 대신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달리지 못한 허전함이 남아 있었다.

하루 종일 잠시라도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며 창밖을 몇 번이고 내다보고 베란다를 오갔다. 이슬비라도 괜찮았다. 뛸 수만 있다면 말이다. 조금 전 빗줄기가 잦아들어서 망설임 없이 재빨리 운동복을 챙겨 입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중강도의 속도로 네 바퀴를 돌고 있을 때 비가 제법 내리기 시작했다. 멈출까 잠시 고민했지만 오히려 마지막 한 바퀴는 전력질주로 밀어붙였다. 다리의 리듬에 맞춰 무거웠던 마음이 서서히 흩어지는 듯했다.

허벅지가 터질 듯하고 목울대가 따가운 그 느낌. 짧고도 강렬한 살아 있는 느낌. 달리기가 주는 매력이자 희열인 그것을 느끼고 싶었던 거다!


오랜만에 시원한 저녁이다.


운동화는 비에 젖고, 나는 달리기에 흠뻑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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