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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울푸드 (feat. 남편)

화로와 함께.

by ligdow


*이 글은 3년 전, 글쓰기 수업 중 10분 글쓰기 시간에 ‘나의 소울푸드’를 주제로 쓴 것입니다.

첫 눈이 내리고 있어 천국에 계신 부모님이 더 보고 싶은 밤입니다.



인간 생활에 꼭 필요한 의식주 가운데 먹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자 큰 즐거움이다. 음식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셀 수 없이 많은 음식 중에서 소울푸드 하나를 고르라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특정 음식이 아니라 그 음식들을 만들어내던 화로를 떠올렸다. 가난했지만 평화롭던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화로 앞에서 먹던 음식들이 내 소울푸드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난방을 하고 소여물을 끓이던 어린 시절, 화로는 친근한 물건이었다. 여덟 살 무렵부터 간단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 나에게 화로 요리는 어려울 것이 없었다. 나무가 다 타 숯이 붉게 익으면 화로에 담고 삼발이를 올린다. 그 위에서 냄비밥을 하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석쇠 위에 고등어를 굽고 김을 올려 살짝 구워 먹으면 세상 맛있었다.


김은 한 장 한 장 들기름을 정성껏 바르고 맛소금을 한 꼬집씩 골고루 뿌린 뒤, 약한 불에 올려 앞뒤로 재빨리 구워야 가장 맛있다. 고소한 들기름 냄새가 퍼지면 아침 여물을 먹는 소들도, 대문 앞 전깃줄 위의 참새들도, 뒷마당 대추나무와 장독대 곁을 지키는 채송화까지 기분 좋은 하루를 여는 듯했다.


농번기의 아침 식사는 여섯 시 무렵이었다. 뒷마루 화로에서 고등어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와 구수한 향이 안방까지 스며들면 엄마가 깨우지 않아도 눈이 번쩍 떠졌다. 냄새가 문창호지를 건드리기만 해도 누워 있을 재간이 없었다. 고등어 살이 익어가는 작은 지글거림이 향기에 실려 더 크게 들려와 결국 이끌리듯 뒷마루로 걸어 나갔다.


이런 날은 “해가 중천인데 아직도 이불 속이냐”는 아빠의 불호령을 들을 일도 없다. 엄마와 함께 아침상을 차리고 소박하지만 든든한 식사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는 부모님은 밭으로, 나는 학교로 향했다. 콧노래와 발걸음이 저절로 맞춰졌다.




연애하던 시절, 남편을 시골집에 처음 데리고 갔던 2003년 4월의 그날이 지금도 선명하다. 인사를 받으시고는 아빠와 엄마는 닭장에서 가장 튼실한 암탉을 잡아 화로구이를 준비하셨다. 우리는 그저 가볍게 인사만 드리러 갔는데 두 분은 벌써 사위를 맞이할 마음이셨던 거다.


남편은 그날 이야기를 지금도 종종 꺼낸다.

“그때 화로에 구운 닭고기 처음 먹어봤는데 정말 잊을 수가 없어. 장인어른, 장모님이 구워주신 그 맛…

아직도 생각나. 내 소울푸드는 처갓집 화로닭구이야. “


화로에서 피어오르던 불빛과 음식 냄새 그리고 온기는 지금도 내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소울푸드의 풍경이다. 시골집에서 부모님의 숨결과 함께했던 그 따뜻한 시간들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2022년 11월 어느 날 저녁에 친정집 마당에서~

그때는 엄마도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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