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나물은 수분을 잃고 작아진 몸에 햇볕과 바람을 통과한 시간을 간직한다. 그것이 좋아 나는 묵은 나물을 먹는다.
호박고지나물
어릴 때 가을이 시작될 즈음이면 밭에서 호박을 잔뜩 따와 썰었다. 손수레 위에 대나무발을 걸쳐놓고, 호박을 겹치지 않게 널어 앞뒤를 뒤집어가며 말렸다.
그렇게 말린 호박은 겨울 밥상 위에 자주 올라왔다.
특히 정월대보름날 아침이면 밥상 한가운데에 놓였다.
-미지근한 물에 30분 정도 담가둔다. 바스락거리던 호박들은 물에서 다시 부풀면서 서서히 부드러워진다.
-주물럭주물럭하면서 두세 번 헹군 후 물기를 짠다.
-마른 채소 특유의 꿉꿉함이 신경 쓰인다면 몇 번 더 반복한다.
-국간장과 마늘, 파로 조물조물 양념을 해둔다.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살살 볶다가 물을 자박하게 넣어 부드럽고 촉촉하게 익힌다. (엄마표 방식)
-물을 자박하게 넣어 익히고 먹을 때 생들기름을 두른다. (내 방식) 기름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웬만하면 볶음 요리는 잘 안 하는 편이다.
호박고지는 씹을수록 들큰하고 고소해서 국간장을 최소한만 넣어도 충분하다. 묵은 나물 중에서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물이다.
시래기나물 조리법은 호박고지나물과 같다.
-자연드림에서 삶은 시래기를 구입한다.
-질긴 껍질을 벗겨내고 깨끗이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국간장과 마늘을 넣고 조물조물한다.
-팬에 넣고 물을 자작하게 넣는다.
시래기가 수분을 먹으며 부드럽고 촉촉해진다.
-먹을 때 생들기름을 두른다.
시래기 된장국의 경우 된장과 국간장, 마늘로 양념을 한다. 마지막에 두부를 썰어 넣는다.
굵은 멸치를 넣거나 멸치가루를 넣으면 구수함이 더해진다.
엄마는 두부찌개나 국을 끓일 때 두부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썰었다. 위험해 보였지만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덟 살의 나는 그 모습이 그저 신기해서 따라 해 보았고, 그때부터 마치 어른만 할 수 있는 일을 해낸 것 같아 요리에 더 재미들인 것 같다.
곤드레나물
곤드레가 제철인 여름에 푸릇푸릇한 곤드레를 먹을 수도 있지만 나는 대체로 건조된 것을 구입해서 먹는다. 왠지 곤드레를 묵은 나물의 주인공으로 대접해줘야 할 것만 같아서다.
-하루 반나절 동안 물에 담근다.
-30분 정도 삶는다.
-물이 식을 때까지 그대로 둔다. 그 과정에서 억센 줄기가 부드러워진다. (대략 4-5시간)
-여러 번 깨끗하게 헹군다.
-물기를 짠 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밥을 한다.
-여분의 곤드레는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는다.
정리하면 반나절을 불리고, 한 번 삶고, 몇 시간을 다시 식히고, 여러 번 헹궈야 비로소 밥상에 오른다.
이 번거로움이 묵은 나물의 매력이다.
고사리나물
엄마는 제사와 명절을 위해 일 년치 고사리를 꺾으러 농번기에도 산에 가셨다. 아픈 허리를 하고도 조상님께는 국산 고사리를 올려야 한다고 했다. 그 지극한 마음이 조상님들에게 전해졌으리라 믿는다.
취나물
어릴 때부터 먹던 거라 지금도 좋아한다.
-고사리와 취나물 조리법도 다른 묵은 나물들과 같다.
요즘 음식에 대한 글을 쓰면서 생각보다 내가 골고루 잘 먹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서 배운 요리 덕분일 것이다.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른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겨우내 먹을 반찬을 준비하느라 엄마는 바쁘게 손을 놀리셨다. 물론 나도 함께였다. 엄마와 가을 햇볕 아래에서 호박을 널던 그때가 오늘은 유난히 더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