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깊어질수록 외출이 줄고 움직임도 둔해지면서 입맛도 줄어든다. 그러다 찬기운이 누그러지면 움츠러들었던 몸이 다시 활기를 되찾는다. 제철 채소들을 찾아 나설 때이다.
마트 진열대에는 투명한 포장재로 감싸인 초록이들 세상이다. 조명에 반사된 눈빛들이 데려가 달라며 나만 바라보는 것 같아 덩달아 조급해진다. 미안한 마음에 눈은 피하고 뒤적뒤적 손끝에 와닿는 것을 얼른 집어든다.
집에 데려온 채소들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하나씩 손질한다. 다듬고 씻는 동안 이미 나는 봄내음에 취해 있다.
한겨울에는 단연 봄동이다.
초록과 노랑의 적절한 조화만으로도 손질하는 중에 침샘이 먼저 봄을 맞이한다. 무침을 몇 번 반복하다보면 겨울이 슬그머니 멀어져 있다.
어릴 때, 이른 아침 두릅을 따러 가신 아빠의 인기척이 들리면 얼른 냄비에 물을 올렸다. 조금만 한눈을 팔면 너무 익어 식감이 물컹해지니 신경 써야 한다.
살짝 데쳐서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봄을 앞질러 다 먹는 느낌이다.
두릅도 끓는 물에만 갔다 하면 본모습보다 더 예뻐지니 반하지 않을 수 없다.
-달래는 나와 친근한 채소다. 우리 시골에서는 달래를 ‘달롱’이라 불렀는데, 초등학생 시절 머리를 하나로 묶고 다녔던 나는 남자아이들에게 ‘달롱머리’라고 불렸다. 그 말이 그렇게 싫어서 달롱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유치하지만 그 시절만의 추억이다.
-심심하게 달래장을 만들어 마른 김을 구워 싸 먹는다.-오이와 무치면 이 또한 밥도둑이 된다.
-겨울이면 포항초를 꼭 해주셨던 엄마를 나도 따라 하게 된다. 해풍을 맞으며 자라서인지 데쳐도 잎이 쉽게 물러지지 않고 뿌리 쪽 분홍색 부분이 들큰하다. 그래서 최소한의 국간장과 들기름 살짝이면 충분하다.
두릅이 봄의 별미라면, 여름의 별미는 호박잎이다.
질기고 뻣뻣한 줄기는 벗겨내고 깨끗이 씻어 데치면 역시나 말끔하게 차려입은 자태를 뽐낸다.
호박잎은 잎의 크기만큼이나 품이 넉넉하다.
안에 올려진 밥과 쌈장 혹은 반찬들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자신은 나서지 않는다. 주연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 배우처럼.
고구마줄기는 잎사귀를 떼어내고 줄기만 남긴다.
끝을 살짝 꺾어 아래로 주욱 내리면 얇은 껍질이 실처럼 벗겨진다. 부드러운 식감을 위한 최소한의 수고다.
김치로 담글 때는 그대로 두지만, 볶아 먹을 때는 이렇게 한 번 더 손이 간다.
-끓는 물에 슬쩍 데쳐 찬물에 헹군다.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볶는다.
-국간장과 다진 마늘, 들기름과 참깨로 양념을 한다.
나는 이렇게 손질하고, 데치고, 최소한의 간으로 계절을 먹는다. 그것이 내가 제철 채소를 대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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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27 발행한 글이 있어 오늘 봄동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