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에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았다. 며칠 동안 스크린 속 단종의 처연한 눈빛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그 여운 때문이었을까, 거실 책장 한쪽에 꽂혀 있던 영월 관광 후기집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어릴 때 한반도 지형과 캠핑장, 박물관 방문, 그리고 장릉과 청령포를 다녀온 이야기를 묶어 관광 후기 공모전에 제출했고 가작으로 뽑혔던 적이 있다.
지금 다시 꺼내 읽어보니 문장들은 단조롭고 부끄러움은 내 몫이다. 어쩌면 화려한 글솜씨보다 네 번을 오가며 우리 가족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야기가 진솔하게 전해졌던 것은 아닐까 싶다.
-청령포 단종이 머물던 곳
-마지막 페이지
영화에서 단종과 엄흥도의 인간적인 관계가 조금 더 깊게 그려졌더라면 어땠을지, 또 금성대군과의 에피소드 역시 긴장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듯해 아쉬움이 남았다.
그사이 영화는 관객 900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요즘 유튜브와 SNS에는 청령포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이 자주 보인다. 많은 이들이 영화를 보고 다시 그 현장으로 향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영화가 남긴 단종의 처연한 눈빛은 그가 머물렀던 소나무 숲의 서늘한 기운으로 이어질 것이다. 조선의 유일한 적장자임에도 비정한 권력 앞에 무너져야 했던 어린 왕. 그의 서글픈 고독과 아픔이 서린 그 자리 앞에 서 보고 싶은 마음이 사람들을 그곳으로 향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12년 전 우리 가족이 호젓하게 걷던 길은 이제 수많은 인파로 북적인다. 하지만 다음에 다시 찾게 된다면 그 북적임조차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 예전에는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 바빴다면 이제는 남편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고 싶다. 영화가 남긴 여백을 조용히 짐작해 보면서.
따뜻한 봄이 오면 오랜만에 다시 영월로 향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