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둘째 주 메릴랜드에 사는 남편이 여름휴가를 받아 일주일 동안 같이 지내게 되었다. 남편은 유치원에 안 보내고 애기와 하루를 함께 보내고 싶다고 했다. 출근하며 애기를 유치원에 데려다주지 않아도 되어 신나게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다. 엄마랑도 집에서 같이 놀고 싶다는 아이에게 제일 좋아하는 파리바게트 치즈빵 두 개 사 올게라는 말을 연신 외치며 이어폰을 낀 채 집에서 출발했다. 귓가에선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며 제법 바람이 부는 늦여름의 날씨를 만끽하며 지하철을 향해 걸어갔다. 오늘만큼은 힘들게 땀 흘리며 유모차를 밀며 뛰지 않아도 되었고, 사람이 가득 찬 지하철에 서서 허리를 굽히며 아이에게 책을 읽어 줄 필요도 없다. 유난히 더 시끄러운 뉴욕 지하철 안에서 내 목소리가 묻히지 않게 더 크게 동화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오늘은 휴대폰의 사진첩을 보며 갔다. 뉴욕 지하철 안에서는 인터넷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보통 책을 읽거나 사진첩을 보며 가게 된다.
오늘도 역시 지하철 안에 사람은 많다. 앉기는커녕 서 있는 두 사람 사이에 껴서 중심을 잡으며 간다. 그래도 좋다. 애기 사진을 보며 심취해서 가다 보면 금방 도착함을 알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앞에 서있는 사람이 자기 가방 뒤쪽에 손을 휘적휘적거린다. 자기 근처로 오지 말라는 신호 같다. 뒤를 돌아봤지만 또 다른 사람이 서 있어 물러설 공간이 없다. 이 꽉 찬 지하철 안에서 뒤로 더 물러설 공간은 없었고 사실 사람이 날씬한 사람 한 명이 더 서있어도 될 정도의 공간이 존재했고 그녀는 문 앞에 바로 서있어서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공간을 가진 듯했다. 그래서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난 다시 사진첩에 집중했다. 사람들이 제법 내리기 시작하는 9 street 역에 도착한다. 내 시선은 여전히 사진첩에 고정한 채 공간이 난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 순간 찰칵하는 소리가 난다. 간호사 복을 입은 흑인 여자가 날 찍는다. 일부러 내가 보란 듯이 대놓고 찍고 내 사진을 누군가에게 보낸다. 순간 너무 당황해서 뭐지 싶다가 나의 허락 없이 찍어 보내는 내 사진에 너무 화가 났다. 왜 찍냐고 뭐 하는 거냐고 물어보니 내가 아직도 자기 옆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좁지도 않은 지하철에서 멀찍이 떨어졌지만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말이다. 자기한테서 떨어지라고 경고했지만 내가 여전히 옆에 있다는 이야기이다.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그렇다. 내 앞에서 자기 가방 뒤로 손을 휘젓던 그 사람인 거 같다. 난 너무 어이도 없고 황당하여 사람들이 내리기 전에 공간이 어디 있으며 날 왜 의심하는지 조차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내 상한 감정은 해결되지 않는다. 내가 내리는 종착역 33번가에는 경찰들이 항상 서 있기에 경찰한테 같이 가자고 했다. 다른 해결 방안이 생각나지도 않았으며 나도 내 허락 없이 찍어 보내는 사진에 화가 나 경찰에게 이야기를 할 참이었다.
"Follow me"라고 말하며 내가 앞 장섰고 경찰에게 다가갔지만 그녀는 점점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녀에게 다시 다가가 같이 가서 말해야 한다며 했지만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계단으로 내려가 버렸다. 경찰에게 달려가 사정을 설명하고 저 여자가 도망간다고 이야기하러 뛰어가고 싶었지만 그 순간 뇌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렇게 경찰에게 알리면 내 신분증을 가져가 이 사건이 기록에 남진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똑같은 역에서 나는 경찰이 내 신분증을 가지고가 기록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때의 일과 오버랩되었다.
몇 달 전, 똑같은 역에서 애기와 함께 지하철에서 내려 여느 때와 같이 엘리베이터에 탔다. 몇 미터 되지 않는 거리를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중간에 갑자기 멈춰버렸다. 이 엘리베이터는 유난히 어둡고 작았으며 나와 애기가 탄 유모차가 타면 사람 두 명이 더 타면 꽉 차는 공간이었다. 컴컴한 이 엘리베이터는 뉴욕 노숙자들에게 화장실 대용으로 쓰이기도 했고 탈 때마다 따라오는 찝찝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유모차를 끌고 지상으로 가는 방법으론 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더구나 뉴욕 대부분의 지하철역엔 엘리베이터가 없다. 오히려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으로 써야 한다. 중간에 멈춰버린 엘리베이터에서 땀이 나기 시작한다. 한 여름이었고 에어컨이 나올리는 없다. 밖에서는 경찰들이 몇 분간 격으로 괜찮냐고 물어보는 소리가 난다. 고치는 사람이 왔지만 쉽게 고쳐질 거 같진 않다. 위아래로 살짝씩 움직이기만 할 뿐 문이 열리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걱정되는 건 하나다. 우리 애기. 깜깜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답답해 하진 않을까 손 부채질을 쉬지 않았고 트라우마가 생길까 걱정되어 핸드폰으로 좋아하는 넷플릭스를 틀어준다. 딸아이는 갑자기 넷플릭스가 틀어진 핸드폰을 받으며 신기했지만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사실에 더 신나 한 것 같다. 같이 탄 등치가 큰 아저씨도 땀 흘리며 가끔씩 말 시키지만 웃으며 대답할 뿐 대화를 이어갈 마음에 여유가 없다. 그렇게 30분 정도가 지나 문이 드디어 열리고 없던 공황장애가 생기기 직전에 탈출하게 된다. 앞에 서 있던 몇 명의 경찰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며 내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고 아이의 이름을 수첩에 정보를 적어 간다. 여러 사람들이 서있고 경찰들의 무전기 소리들이 기억에 남을 뿐 그냥 신분증을 되돌려 받고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렇다. 이 엘리베이터 사건이 오버랩되며 그런 시간들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고 내 신분증을 또 가져가며 어딘가에 기록이 남을 수도 있는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 이건 엘리베이터로 인해 일어난 사고였지만 도둑으로 의심받은 건 나로 인한 사건 같았다. 지금 H1B 비자 신분으로 영주권을 받고 미국에서 정착하고 싶은 생각이라 영주권 심사에서 불리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순간적으로 스쳤다. 그래도 나의 억울함은 이 여자가 날 따라오면 무조건 리포팅한다 였지만 그 여자는 사라져 버렸고 허망함과 억울함이 남은 채 그 자리에서 화를 삭이며 몇 분 동안 서 있었다. 마음을 추스르며 지상으로 올라왔지만 살면서 처음으로 도둑취급을 받은 거에 분하여 눈물이 흐른다. 영어로 조리 있게 맞받아 치며 말하지 못한 나 자신도 원망스럽고 어쩌면 쓸데없는 걱정으로 인해 경찰한테 향하는 발걸음을 주춤거린 것도 바보 같았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 생각나고 하소연할 사람은 하나. 남편이다. 남편에게 울면서 전화한다. 내가 이 도시에서 살기 싫다고 했지 하면서 남편에게 원망 같은 소리를 한다. 메릴랜드에서 일하는 남편은 어리둥절했겠지만 뉴욕에서 일하는 건 나다. 내가 여기서 일하기로 한 결정을 왜 남편에게 원망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지만 남편은 같이 그 사람을 욕하며 내 편이 되어준다. 사실 하소연으로 바뀌는 것은 없지만 울면서 하소연을 하고 나니 마음이 풀린다. 오피스에 도착하여 자리에 앉았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내가 했었어야 하는 말들을 영어로 다시 생각하며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경찰에게 리포팅을 하며 사과를 받는 상상을 한다. 내가 도둑같이 생겼나, 이건 아시안 여자여서 받은 인종차별인가, 뒤에 서있기만 하면 다 도둑인가 하는 오만 생각들로 일은 잡히지 않은 채 하루를 보냈다.
한 며칠 동안 속상한 마음이 남아 있었고 지하철을 다시 타고 싶지 않아 남편의 휴가 기간인 일주일 동안 재택근무를 하였다. 그렇게 그 일이 잊힐 쯤인 3주 뒤쯤 남편은 다시 메릴랜드로 돌아가고 나는 또 열심히 유모차를 끌고 출근하던 평일날 그 여자를 또 마주쳤다. 그때의 울분이 다시 떠오르며 다가가서 따질까 하는 별의별 생각들이 다 들었지만 나는 평소와 같이 딸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내가 그녀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사람임을 스스로 보고 깨닫고 사람을 자신의 편협한 시각에서 섣불리 판단하는 실수를 뉘우치길 바랐다. 그녀도 맞은 편의 우리 모녀를 의식한 듯 고개를 더 푹 숙이며 종착역까지 향했다.
힘든 일이나 억울한 일이 생길 때 마인드 컨트롤이 되지 않으면 감정의 소모와 시간의 낭비임을 잘 알지만 막상 나 자신에게 닥치면 현명하게 대처하질 못 한다. 시간이 지나 1차적인 감정들이 지나갔던 두 번째 만남에선 어떻게 대처할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말보다 무언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생각하며, 편견과 오해로 인해 상처받는 일 혹은 상처 주는 일을 앞으로는 조심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