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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이야기 1: 혼돈에서 질서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혼돈에서 질서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by 이효재

[성경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창세기 1~3장은 세상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저자의 의도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작성된 문학 양식입니다.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우주 기원을 설명하는 과학적 사실을 전달하는 목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가 기록될 당시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신 하나님이 하신 일을 담고 있는 창조 이야기는 유(有)에서 또 다른 유(有)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탐구하는 진화론과 경쟁하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창조 이야기는 과학적 증거를 요구하는 진화론과는 달리 우리로 하여금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가 누구이며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와 같은 철학적 신학적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게 합니다.


12.3 계엄 선포 이후 짙은 어둠과 혼돈에 빠져있는 대한민국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생명의 번영을 추구하는 과제를 부여받았습니다. 불안한 이 시대에 우리는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에서 어둠을 비추는 진리의 빛 아래 생명을 만드시고 보존하시고 번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혁명적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효재의 브런치 스토리>는 20회에 걸쳐 창조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짙은 어둠에 잠겨 있던 세상에 빛을 비추시고 죽음의 세상을 생명으로 세상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 그 일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철학자 박구용이 진단했듯이 "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에" 처한 이 시대에 나는 어떤 세상을 꿈꾸며 공헌해야 하는지를 창조 이야기에서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성경 본문은 대한성서공회가 펴낸 개역개정판을 사용합니다.]


<창세기 1:1,2>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천지(天地), 곧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신 존재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 성경의 핵심 주제와 인생 최고의 지혜가 담겨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성경의 첫 구절의 히브리어 성경(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에트 하샤밈 베에트 하아레쯔)은 하나님이 온 우주와 이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자녀를 세상에 낳으신 것처럼, 하나님이 세상을 있게 하신 바로 그분임을 강조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에"라는 접속절의 의미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창세기 번역가들은 이 둘 가운데 어떤 구절이 더 옳은지를 씨름하고 하나를 선택합니다. 한글 공동번역은 "한 처음에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지어 내셨다"로, 표준새번역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로 개역개정 성경처럼 번역하지만 각주를 달아서 두 번째 번역의 가능성이 있음을 명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번역을 선택하더라도 하나님이 창조를 시작하실 때 세상이 어떤 상태였는가에 주목해야 합니다. 배경을 알아야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의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2절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혼돈과 공허로 번역된 '토후 바보후'는 아무것도 없고 텅 비어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 표현은 우상숭배로 부패에 찌들 대로 찌든 예루살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뒤 야생동물들의 거처가 되어버린 비극의 땅을 상징합니다(이사야 34:11). 인걸은 간데없고 잡풀만 우거진 텅 빈 땅입니다.


땅은 또한 흑암과 깊음에 뒤덮였습니다. 깊음(터홈)은 바닥을 모르는 심연(abyss)을 뜻합니다. 그곳에 칠흑같이 어두운 깜깜한 어둠이 쌓여있었습니다. 이 어둠은 우주의 공간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암흑 물질(dark matter)입니다. 빛 하나 없는 그믐 밤하늘은 그야말로 무섭고 두려운 어둠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과 같은 세상을 만들기 전에 하늘과 땅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에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이런 어휘들은 무질서와 무의미와 죽음을 상징하는 언어들입니다. 어떤 생명도 존재하지 않는 우주의 행성들처럼, 지구는 텅 비어 있었고 깊고 깊은 어둠의 바다만 찰랑거리고 있는 죽음의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누아흐)이 혼돈과 죽음의 땅 위를 감싸듯이 덮고 바람처럼 땅을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질서와 생명의 영입니다. 죽음이 있는 곳을 생명의 기운이 보자기로 싸듯이 지키고 있는 형국입니다. 혼돈의 땅이 질서의 땅으로 변화되고, 죽음의 땅이 생명의 땅으로 태어날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구원의 역사가 이제 막 시작되는 찰나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단순히 물질의 탄생에 대한 설명에 그치지 않고, 그 물질의 탄생이 갖고 있는 깊은 뜻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창조 이야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시고 사랑으로 돌보신다”는 구원 메시지를 전합니다.


천지의 창조는 생명의 창조이고, 생명의 창조는 죽음의 죽음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세상에서 죽음이 생명을, 거짓이 진리를, 악이 선을 영원히 이길 수 없다는 진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혼돈과 공허(토후 바보후)와 흑암의 깊음(터홈)은 새로운 하나님의 창조가 시작되는 징조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는 세상의 어둠과 죽음과 악은 잠시일 뿐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생명들을 낳은 창조주이시며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처럼 우리를 사랑으로 보살피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역사 속에서 가장 명확하게 구현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밤중에 갈릴리 호수에서 풍랑으로 죽을 위험에 처했을 때, 예수님은 물 위로 걸어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막 6:50).” 그리고 곧바로 풍랑이 잠잠해졌습니다. 이 ‘기적’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의 세력을 잠재우고 생명을 살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질병과 불운과 실패에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치유 가망성이 없는 말기암 환우들, 불황에 적자를 견디지 못해 문을 닫아야 하는 자영업자들, 정리해고를 당하고 생계가 막막한 가장들, 대통령의 불법적 계엄으로 대혼란에 빠진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국민들,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있는 젊은이들, 바다에서 거리에서 비행기에서 순식간의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고 깊은 슬픔에 잠겨있는 유가족들...


창조 이야기는 이런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입니다. 올해도 세상은 죽음과 파괴와 고통으로 시작됐습니다. 창조 이야기를 읽으며 혼돈과 흑암에서 빛과 진리와 생명의 전조 증상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혼돈과 흑암을 이유로 거짓과 파괴와 절망으로 유혹하는 악의 세력 편에 서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는 혁명의 흐름을 타야 합니다. 우리는 결국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고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시 46:1). (글/이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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