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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이야기 17: 회피와 책임 전가

by 이효재

<창세기 3: 9~13>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정직한 것이 가장 편하고 쉽게 사는 길입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일이 정직해지는 것입니다. 삶에 어려운 문제가 생겨 고통스러울 때,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정직하게 대면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부부의 갈등, 부모 자식의 갈등, 연인들의 갈등과 같은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서로 정직해지면 의외로 쉽게 해결되고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합니다.


누구나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서로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며 새로워지려는 노력은 어렵기만 합니다. 왜 우리는 해답을 알고도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답변으로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는 죄의 문제를 끄집어냅니다.


죄는 인간성을 왜곡하고 왜곡된 인간성은 자기 책임을 회피하고 희생양을 찾습니다. 악은 확대 재생산됩니다. 제어되지 않는 죄는 또 다른 죄를 부르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죄를 인정하는 자기 부인의 강을 건너야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인간 스스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 모두가 아담입니다.


죄를 짓는 순간 내면의 양심은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견딜 수 없습니다. 그나마 아담과 하와처럼 ‘정직한 죄인’은 이 두려움을 알기에 하나님을 피합니다. 이런 사람은 가능성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양심에 무딘 ‘교활한 종교인’은 종교적 언어에 익숙한 나머지 자기를 기만하고 두려움도 없이 감히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고 찬양하며 예배를 드립니다. 최악의 죄인입니다.


죄인의 전형적 특징은 회피와 책임 전가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네가 먹었느냐”고 물어보시자, 아담은 자신의 불순종을 인정하는 대신 하와에게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궁극적 책임은 “여자를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하나님에 있다는 뉘앙스였습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녀에게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고 물었지만, 여자는 자신을 유혹한 뱀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아담과 하와 모두 자기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를 유혹한 자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결국 자기 죄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사탄을 막지 않으신 하나님에게 있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생명과 행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모든 불행은 죄를 지은 내 책임이라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나에게는 죄를 정직하게 인지하고 인정할 용기가 없고 죄를 책임질 능력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변명을 일삼고 내 죄를 억울한 희생양에게 전가하는 오래된 문화적 관습에서 살아왔습니다. 힘 있는 사람들이 지은 죄로 희생당하는 사람들은 늘 약자들이었습니다.


죄의 책임 회피와 전가를 끊어내지 않으면 세상은 불의에서 벗어날 수 없고, 힘없는 사람들만 죽어갑니다. 이러한 죄의 악순환을 끊고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킨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이 죽음은 죄인을 위한 의인의 죽음이었습니다. 기독교 신학 용어로 이것을 '대속적 희생'이라고 합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문화인류학자 르네 지라르는 인간의 희생양 제도와 문화를 연구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스스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사람들은 신을 진노하게 한 인간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마을에서 가장 순결한 사람을 희생제물로 바쳤습니다. 십자가는 그와 정 반대로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대신 죽은 사건이었습니다.


전통적 희생양 제도는 신을 진노케 한 죄를 누가 지었는지 덮고 숨기는 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어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의 책임을 회피하고 전가한 이후 지속되어 왔던 반생명적 희생제도가 그리스도를 통해 점차 사라졌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죄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전가할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도 세상 안에서 살기에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죄를 정직하게 대면하고 책임을 집니다. 이 용기는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이미 용서받았다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요즘 대한민국은 죄를 짓고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고 아랫사람들에게 전가하는 정치 지도자로 인해 대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책임질 능력도 의지도 없는 사람의 죄가 온 국민의 삶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글/이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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