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 16~21>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인생의 모든 고통에는 반드시 반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고통받는 우리를 은혜로 감싸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고통 그 자체는 파괴적이고 반생명적이고 괴로운 것이지만 우리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고통은 우리를 구원하는 수단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즉각 심판하시고 멸망에 이르게 하시지 않습니다. 대신 죄로 인한 고통을 겪게 하시고 고통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하십니다. 우리를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셔서 복된 삶을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사람이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으로 여자와 남자의 삶에 고통(히브리어 이짜본)이 찾아왔습니다. 여자는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할 때 말할 수 없는 생명의 기쁨으로 행복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출산의 고통을 통과해야 합니다. 평등했던 부부 관계가 남편의 우월적 지위와 아내의 종속 관계로 변질됐습니다. 이러한 고통은 하나님이 저주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의 죄로 인해 왜곡된 생명의 질서가 낳은 현상입니다.
남자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생 수고해야 합니다. 노동하는 수고(이짜본)는 여자의 출산통과 같은 단어입니다. 노동이 고통스러워진 것은 땅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기 때문입니다.
타락 이전에 땅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풍부한 양식을 내어주었지만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은 먹을 양식(채소)을 생산하기 위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헤치며 땀 흘리고 힘겹게 일해야 합니다. 땅(일터)이 사람과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은 하나님의 저주처럼 견디기 힘듭니다.
여자와 남자의 고통은 모든 사람들이 겪는 삶의 어려움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고통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가슴 아픈 지혜입니다.
임신과 출산의 고통은 사람이 신이 아니라 피조물이라는 한계를 깨닫게 하려는 하나님의 장치입니다. 고통 없이 생명을 낳는 기쁨만 누리면 여자는 스스로 신이 되어 사탄과 함께 하나님께 저항할 것입니다.
노동의 고통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인한 고통으로 사람의 노동에 한계를 지어주고 자기 파괴적 무한 욕망을 억제하십니다. 남자와 여자에게 고통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피조물임을 깨닫게 해주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이 흙에서 나온 사람을 흙으로 돌아가게 하신 것은 삶의 고통에서 해방되고 주 안에서 안식의 평안을 누리도록 하시는 은혜입니다(계 14:13). 사람이 죽지 않으면 단테가 지옥에서 목격한 것처럼 영원히 세상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며 살아야 합니다.
아담의 아내는 생명을 뜻하는 ‘하와’라는 이름으로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히셨는데 이 옷은 성전 제사장들이 입었던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앞치마와 같은 것입니다. 비록 사람이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세상을 생명으로 번영케 하도록 돕는 제사장적 소명(창 1:28)을 박탈하지 않고 오히려 인증하셨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자초하지만, 하나님은 고통을 은혜로 감싸주십니다. 우리 눈에 하나님의 심판처럼 보이는 고통이 사실은 죄를 억제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미워하지만 우리를 미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생명을 사랑하시고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길로 이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살라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이 찾아올 때 저주가 아닌 그 이면에 감춰진 구원의 빛을 보아야 합니다. (글/이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