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 22~24>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우리는 종종 삶이 힘들 때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나러 갑니다. 안전하고 행복했던 부모님 품에 안기고 싶고 조언을 듣고 싶어 합니다. 온통 회색빛으로 우중충한 에덴의 동쪽 시민으로 살고 있는 나에게 부모님과 함께 있던 시절은 에덴동산과 같습니다.
내 근원을 그리워하고 찾는 것은 그곳으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찾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근원이었던 에덴동산은 막혀있습니다. 우리에게 열려있는 길은 에덴의 동쪽 세상입니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떠나온 에덴동산을 되돌아볼 뿐입니다.
구약 성경의 창조 이야기(창세기 1~3장)는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욕으로 가득 찬 역사를 반성하고 구원을 갈망하던 시기에 기록되었습니다. 에덴의 동쪽에서 바라본 에덴동산 이야기입니다. 창조 이야기는 그들이 당면하고 있는 고통스러운 현실이 왜 일어났고 어디에 소망이 있는지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었습니다.
우리는 창조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도달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에덴의 동쪽으로 쫓아내셨습니다. 그곳은 안식이 없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현존이 느껴지지 않는 곳,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곳, 하나님의 뜻이 무시되는 곳, 하나님을 떠난 곳. 여기가 에덴의 동쪽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의 동쪽에서 마주한 현실은 큰 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한 비극적 세상이었습니다. 살인과 거짓과 음모가 끝없이 펼쳐지는 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죄인들이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창조 이전의 죽음의 상태로 되돌리지 못하도록 그들을 에덴의 동쪽으로 내보내셨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거룩하지 못한 자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오면 죽임을 당합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 동쪽 입구에 그룹들과 불 칼을 두어 죄인들의 성전(에덴동산) 침입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의 동쪽으로 쫓아내실 때 홀로 에덴동산에 남지 않으시고 그들이 가는 곳으로 함께 나가셨습니다. 에덴의 동쪽을 새로운 에덴동산으로 만드시겠다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의지입니다.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들의 후손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같이 가셨고, 하나님이 가시는 곳마다 “보기에 참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는 새로운 창조가 일어났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창조가 지금도 동쪽 세상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지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의 동쪽에서 땅을 갈아(경작해) 먹고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바벨론 유배지처럼 아무리 거칠고 어두운 세상에서도 열심히 일해서 생육하고 번성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엄중한 소명이자 이 일이 가능하도록 능력을 주고 이끌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은 결코 취소될 수 없습니다. 아담은 비록 죄를 짓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이기고 창조 세계의 선을 이루십니다. 우리의 악을 이용해 더 큰 선을 창조하기도 하십니다.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모든 에덴의 동쪽이 에덴동산으로 새로워질 때까지 하나님의 열심은 중단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에덴의 동쪽에서 새 에덴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이제 에덴의 동쪽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의 해결은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소설가 존 스타인벡은 <에덴의 동쪽>에서 주인공 애덤 크래스트의 삶을 통해 악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선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고 말했습니다.
전쟁터에서 저격수 애덤은 일부러 저격 대상을 빗맞혔습니다. 애덤은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 수 있다"로 해석했습니다. 히브리어 동사 '팀샬(다스리다)'을 윤리적 명령이 아니라 선택의 의지로 바꾼 것입니다.
에덴의 동쪽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악하게 살 수도 있고 선하게 살 수도 있습니다. 창조 이야기는 우리에게 창조주 하나님 편에 서서 새로운 에덴동산을 만들어가는 선택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글/이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