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캐나다 밴쿠버에 살고 계시는 폴 스티븐스(R. Paul Stevens) 교수님을 댁으로 찾아뵈었다. 토론토에서 한국으로 오는 길에 교수님과 나의 베스트 프렌드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밴쿠버에서 나흘을 머물렀다.
올해 여든일곱의 나이이신 교수님을 뵌 지 5년이 넘었다. 몇 년 전에 사모님을 먼저 보내시고 혼자 사시면서 외롭고 힘들지는 않으신지 걱정도 되고 건강이 염려가 되어 캐나다 방문 길에 교수님을 꼭 뵙고 싶었다.
교수님을 시내의 좋은 레스토랑으로 모시고 멋진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다. 그런데 교수님은 나에게 점심시간에 맞춰 댁으로 오라고 하셨다. 교수님 댁에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가니 교수님은 함께 먹을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깜짝 놀랐다. 노 교수님께서 제자를 위해 직접 식사를 만드시다니...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참치 크림 파스타와 그릭 샐러드, 커피를 만들어 주셨다. 음식이 참 맛있었다. 교수님과 식사는 많이 해보았지만 교수님이 직접 만들어주신 음식은 처음이었다. 이 정도 퀄리티의 음식을 만들어 드실 수 있다면 홀로 사셔도 건강에 큰 문제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친 뒤 두 시간 동안 거실에서 대화를 나눴다. 나는 교수님의 근황을 물어보았고, 교수님은 건강의 특별한 어려움은 없다고 하셨다. 사모님이 떠나신 뒤에 많은 사람들이 교수님을 걱정했다. 평소에 워낙 금슬이 좋으셔서 외롭고 우울하시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교수님은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생활에 어려움을 느낄 정도로 정서적으로 힘들지는 않다고 말씀하셨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쓸쓸함이 교수님에게서 느껴졌다.
교수님은 여전히 일이 많으시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일터신학자로서 끊임없이 책을 쓰고 강의하고 세미나를 진행하신다. 지금도 일터신학 책 Working Blessedly Forever vol.3를 편집하고 계신다. 한쪽 눈을 실명하셨지만 괘념치 않으시고 매일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시며 제자들이 쓴 원고를 일일이 교정하고 편집하신다.
나는 밴쿠버 Regent College에서 2001년 가을 학기에 교수님을 처음 만났다. 그 이후 나는 교수님에게 일터신학을 배웠고 지금까지 교수님과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고 글을 쓰고 있다. 교수님은 자신의 저서에 사인을 해주시면서 나를 '동료와 친구(Colleague and Friend)'라고 써주셨다. 나에게는 황송한 최고의 칭호다.
폴 교수님(제자들은 교수님을 이렇게 부른다)은 내가 아는 그리스도인 가운데 가장 그리스도인다운 분이시다. 자신의 삶과 학문으로 신앙을 살아가신다. 나는 교수님의 삶에서 '소명'과 '겸손'을 눈으로 보고 배웠다.
교수님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살아내는 축복으로 여기신다. 눈을 감으실 때까지 아마 손에서 일터신학 원고가 떠나지 않을 것이다. 교수님을 따르는 수백 명의 제자들은 캐나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오대양 육대주의 흩어져 지금도 교수님의 강의를 동영상으로 듣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그대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자들이 교수님을 떠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교수님의 겸손과 포용력이다. 교수님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모습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보여주신다. 교수님과 제자들이 유럽에서 열린 세미나를 마치고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을 때였다. 먼저 세관을 통과하고 나오신 교수님은 제자들이 다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으로 가는 것을 확인하시고 마지막으로 떠나셨다. 가시는 길에 여러 학생들을 자기 차로 각자의 집에 데려다주셨다.
폴 교수님의 제자들은 교수님을 인생의 선물로 여긴다. 교수님은 자신이 가르치시는 학문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하신다. 학교에서 은퇴하신 지 22년이 넘었지만 변함이 없으시다. 이런 분을 지도교수님으로 모신 나는 분명히 행운아다. 교수님, 나의 교수님,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하게 오래 사시면서 우리에게 삶과 신앙을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