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어머니는 혼자 살면 외로우니 식물을 키우라고 하시며 '스투키'라는 식물을 챙겨주셨다. 어머니께서는 물을 자주 줄 필요가 없으니 2주에 한 번씩만 물을 주면 된다고 신신당부하셨다. 시간이 흘러 2주 정도가 지났을 때, 종이컵으로 한 컵 가득 화분에 물을 따라주었다. 하지만 식물을 처음 키워봐서 한 컵으로는 절대로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서 세 컵 정도의 물을 더 주었다.
초보자들이 키우기 쉽다고 알려진 식물도 많은 물을 주니 결국 죽고 말았다. 옛말에 '부모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라는 속담이 있다. 식물에 대한 과한 애정을 줄이지 않는 한 당분간 떡 먹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잘못을 저지른 뒤, 다시는 식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 어언 5년이 지났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고 이것저것 집을 꾸미는 와중 식물을 다시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번에는 다시는 떠나보내지 않겠다고 가슴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파키라'라는 식물을 키우게 됐다.
봄에 만난 녀석이 아직 살아있어서 나와 함께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던 것은 아니다. 여름에 접어들었을 무렵, 휴대전화에 폭염주의보 재난 문자가 왔다. 파키라는 반양지 식물로 알려져 있으나, 과한 애정이 스멀스멀 올라와 식물은 광합성을 해야 한다며 뜨거운 햇볕에 반나절 집 밖에 내놓았었다. 해가 지고 나서 저녁에 식물을 옮기는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좋은 의도로 광합성을 권장했던 행동이 화를 부른 것이다. 뜨거운 햇빛에 푸르던 초록색 잎들은 군데군데 갈색으로 염색한 듯 잎이 타버렸다. 슬퍼할 틈도 없이 인터넷을 검색해 본 결과, 당장 할 수 있는 조치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시 한번 녀석이 자라날 수 있도록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내 목소리가 하늘에 닿고, 마음이 녀석에게 전해졌는지,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새잎이 무성히 자라났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가 내게 딱 맞는 말이다. 마음이 앞서서 과한 행동을 하게 되면 유난히 결과가 좋지 않을 때가 많다. 때론 묵묵히 한 걸음 뒤에서 응원하며 바라보는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하지 않을까. 일 보 후퇴 이 보 전진이 우리의 관계를 나아가는 중요한 발걸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