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수무책

by 창운

루팡, 네티, 괴도 키드는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 방영되던 만화 속 도둑들이다.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나이였음에도, 이들의 범행이 성공하는 날이면 나는 마치 콩고물이 떨어지는 듯 기뻐하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반대로, 예고하고 찾아오는 도둑을 잡기 위해 팀을 꾸려 계획을 세우지만, 경찰은 늘 허탕을 치거나 속수무책으로 당해 그들의 수사 방법을 비판했다.


지문을 추출해서 범인을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예고하고 찾아오는 도둑을 문 앞에서 기다리면 잡을 수는 없는 걸까. 작중 경찰의 수사는 언제나 소모적이었고, 반복되는 실패는 그들의 한계를 드러냈다. 매번 같은 수법에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그들의 실패가 단순한 무능력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창운 님의 계좌로 월급이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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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이달의 요금 안내서 도착'

띠링-

'교통비 이용대금 출금 예정입니다.'


가스비, 보험비, 수도세, 전기세, 주택청약…


매월 쌓여가는 청구서와 빠져나가는 계좌를 보며, 나는 이 모든 것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