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추석, 아버지는 오래전의 일을 담담히 꺼냈다. 기름 냄새 옅게 밴 전과 식혜 사이로, 이십 년 전 어느 저녁의 공기가 내려앉았다.
그 시절, 아버지는 나를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맡겨두고 매달 생활비를 보냈다. 그달은 돈을 보내지 못했다고 했다. 주머니가 비어 있었고, 마음은 무거웠었다. 그래도 아이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아버지는 차를 몰아 집 앞 골목 어귀에 멈춰 섰다. 생활비를 보내지 못한 죄책감은 문턱을 넘지 못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벽이었다. 굳게 닫힌 현관문은 마치 극장의 육중한 문처럼, 안쪽의 모든 빛과 소리를 가두고 있었다. 아버지는 차 안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고 했다. 핸들 위로 달빛이 흘렀고, 손끝이 차가워졌다.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멀리서 흰 도복을 입은 아이가 걸어왔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붙어 있었고, 흐릿한 골목 속에서 그 흰색만이 환히 빛나고 있었다. 그 아이는 아버지의 존재를 모른 채, 익숙한 걸음으로 문 앞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닫히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참 동안 현관문을 바라보다가, 골목에 다시 적막함이 내렸을 때. 시동을 걸고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왔다고 했다.
아버지의 이야기가 끝났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젓가락 끝에 묻은 기름방울을 바라보았다. 그날의 아버지가, 그날의 골목이, 내 안에 서서히 피어올랐다.
유년의 어떤 날은 그렇게, 아버지의 눈앞에서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이제 안다. 그날 저녁, 텅 빈 골목에 머물렀던 시선 하나가 얼마나 오래 내 곁에 남아 있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