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화면의 빛이 사그라드는 것을 본다. 배터리 경고등이 희미하게 깜빡인다. 마치 작은 등대가 곧 침몰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듯하다. 나는 그 붉은빛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모든 것은 저렇게 자신의 끝을 예고하는 걸까.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기계가 제 몸을 차갑게 식히는 순간, 유한함의 냄새를 맡는다. 그것은 희미한 먼지 냄새 같기도 하고, 낡은 종이의 냄새 같기도 하다.
살갗에 닿았던 모든 것들은 서서히 식어간다. 영원을 속삭이던 목소리는 어느새 귓가에서 흩어지고, 피를 나눈 형제보다 진하다고 믿었던 우정은 계절이 바뀌듯 색이 바랜다. 모든 것이 시간 앞에서 서리를 맞은 풀잎처럼 힘을 잃는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에 홀로 잠기는 듯한 슬픔이 밀려온다.
내 삶에 있어서는 무한을 믿고 싶었다. 하지만, 나 역시 유한한 살과 뼈를 가진 가녀린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차라리 영원을 가장한 기한을 정하고 싶다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에게 ‘만년’이라고 적힌 유통기한을 새겨주고 싶다. 시간의 부패로부터 나의 사랑, 나의 우정을 지켜내고 싶다. 결코 녹슬지 않을, 그런 완전무결한 보존. 그것들을 차곡차곡 선반에 쌓아두고 먼지 쌓인 라벨 위 ‘유통기한, 만년’이라는 글자를 보며 안심하고 싶다.
물론 이것은 가엾은 인간의 헛된 바람에 불과하다. 나는 고작해야 희미하게 깜빡이는 배터리 경고등 앞에서 다음의 어둠을 예감하는 연약한 존재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모든 유한한 것들을 내 작은 품에 끌어모아, 마지막 순간까지 온전히 짊어지고 가고 싶다. 그것들이 본래의 빛을 잃고 다른 무언가로 변해버릴지라도, 그 변화의 과정마저 사랑하며 끝까지 보존하고 싶다.
결국 모든 것은 끝이 난다. 이 문장의 서늘함이 모든 온도를 남김없이 앗아가는 것만 같다. 노트북이 완전히 꺼진 어둠 속에서 침묵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