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의 여름, 공장의 소음은 귀가 아닌 몸으로 들어왔다. 자동차 부품을 찍어내는 프레스 공장의 생산라인, 기계는 쉴 새 없이 굉음을 쏟아냈다. 그 쇳소리는 귀마개를 착용해도 뚫고 들어와 온몸을 멍하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대화는 사치였다. 우리는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침묵했고, 나머지는 눈빛과 손짓으로 이야기했다.
점심시간이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언제나처럼 일정한 박자로 울리던 굉음 사이로 날카로운 비명이 파고들었다. 소리가 터져 나온 곳으로 모두의 시선이 꽂혔다. 늘 살갑게 나를 챙겨주던 형님이 손을 부여잡은 채 주저앉아 있었다. 바닥에 핏방울이 번지는 모습에 시간이 순간 필름이 끊긴 것처럼 멈췄다. 반장님이 그를 부축해 병원으로 향했고, 공장은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거대한 소음에 잠겼다.
‘기계에 손을 넣지 말 것’. 당연한 규칙이었지만, 형님은 순간의 방심으로 그것을 어겼고, 엄지손가락을 잃을 뻔한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손가락은 무사했지만, 그의 오른쪽 엄지손톱은 그날 이후로 다시 자라지 않는 영원한 흉터로 남게 되었다. 며칠 뒤 퇴근길에 괜찮으시냐 물었을 때,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 인마, 괜찮아. 집에다가는 그냥 살짝 긁혔다고 했어. 식구들 걱정시키면 쓰나. 먹고살려면 다녀야지.
형님의 웃음소리에서 나는 불현듯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고등학생 시절, 거실에서 할머니와 아버지가 나누던 대화를 우연히 엿들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낮은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궁금한 게 많지요. 그래도 알아서 잘하겠지. 믿어야지. 서로 믿으니까, 말없이 지내는 거 아니겠어요. 그저 묵묵히 일하고 살다가, 나중에 정 도움이 필요하다 하면 그때 손 내밀어주면 되는 거지요.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의 침묵은 단순한 무뚝뚝함이 아닌, 하나의 우주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 안에는 걱정과 믿음으로 이루어진 소리 없는 약속이었다. 궁금하지만 묻지 않는 것. 불안하지만 내색하지 않는 것. 그 침묵의 좌표 위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운행하고 있었고, 나는 그 궤도를 아슬아슬하게 비행하는 작은 위성이었다.
이제 와 생각한다. 공장에서 일하던 형님의 자라지 않는 손톱과 아버지의 묵묵한 침묵은 같은 종류의 언어라는 것을. 그것은 한 남자가 가장이라는 이름의 행성에 불시착한 뒤, 제 몸에 새겨진 지워지지 않는 흉터이자, 들리지 않는 소리라는 것을. 그들의 단단한 어깨와 무심한 표정 뒤에는 얼마나 많은 삼켜버린 말들이 화석처럼 굳어 있을까.
나는 여전히 그 행성의 중력을 알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 내 어깨 위로 비슷한 무게가 내려앉는다 해도 과연 그 침묵의 언어를 온전히 해독할 수 있을까. 질문이 아득하게 맴돈다. 오늘 저녁에는 별다른 이유 없이 그 소리 없는 행성에 안부 신호라도 남겨야겠다. 아주 짧고, 사소한 신호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