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 안에서 너무 많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늘 생각했다.
“왜 인생은 항상 나를 선택 앞에 세울까?”
나는 선택 앞에 서면 위축되고, 고민하고, 결국엔 후회한다.
선택이라는 아이 뒤에는 늘 후회라는 아이가 따라온다.
어린아이도 어떤 과자를 고를지 고민하다가, 잘못 골라 후회하기도 하듯이.
어른이 되면 그 선택은 더 크고, 더 깊고, 더 무겁다.
그리고 그 뒤에는 여전히 후회가 찾아온다.
나는 이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후회는 결국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을 직접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찾아오는 감정이니까.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후회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선택과 후회는 늘 함께 움직인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왜 이렇게 많은 선택들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그 답을 모르겠다.
어릴 때는 그 답을 꼭 찾고 싶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이다가 철학책을 발견했고, 그걸 읽다가 나는 울었다.
왜 울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 후로 철학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결론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삶은 마치 나룻배를 타고 여러 갈래의 물길을 지나가는 일이라고.
그 앞에서 우리는 선택이라는 아이와 후회라는 아이를 만난다.
어떤 날은 길이 너무 어둡고,
어떤 날은 길이 너무 좁고,
또 어떤 날은 돌이 많아 금방이라도 배가 부서질 것 같고,
가끔은 물이 너무 얕아 노가 닿지 않는 길도 있다.
아마 이런 길들이 우리에게 ‘시련’이라는 아이일 것이다.
이 시련의 길을 지나오다 보면,
가끔은 내가 타고 있는 나룻배나 노가 부서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는 잠시 내려 쉴 수 있는 작은 포구가 필요하다.
거기서 배를 고치고, 노를 다시 손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언젠가는 아예 항해할 힘조차 잃게 되니까.
포구에 잠시 머무는 일은 절대 ‘포기’가 아니다.
그저 다음 항해를 위한 준비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준비의 시간을 포기처럼 본다.
그게 나는 늘 안타깝다.
준비가 없으면, 우리는 금방 또 포구를 찾게 될 테니까.
오히려 더 잘 가기 위해서 서는 건데 말이다.
시련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이렇게 묻는다.
“이 시련이 지나면 어떤 길이 나올까?
그 길은 조금 더 편한 길일까?”
두렵지만 그래도 간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까.
나는 멈추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