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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 Dec 13. 2024

여고 동창회를 다녀와서

슬기로운 이순생뫌-내가 버려야 하는 것들

이제 흰머리로 살기로 결심하다.


여고동창회날 아침입니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예쁜 친구들을 만나러 갑니다.  약간은 긴장이 됩니다.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 염색을 했는데요. 오늘은 안 합니다.  전라남도 고흥으로 귀촌한 나는 두 달에 한번 정도 부산집으로 옵니다. 딸이 혼자 살고 있는 집에 와서 집안일도 하고 못 만났던 지인들을 만나고 갑니다. 그때 미용실도 갑니다. 오늘은 염색은 NO, 커트만 할 것입니다.


퇴직 후부터는 염색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작심한 지 두세 달 만에 항상 포기해 버렸습니다. 부산에 와서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 꼭 미용실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 하지 않으려던 염색을  이제 안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글을 적습니다. 나에게 하는 맹세이랍니다.


지난 20년간 계속 염색을 해왔습니다. 처음에는 새치염색이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완전 백발이 되어 있습니다. 직장 다닐 때는 당연히 염색을 했어요. 3주에 한 번씩 해야 했어요. 퇴직을 하면 염색을 안 해야지 생각했는데 퇴직을 하고도 한 번만 더, 여고동창생 만나러 갈 때 한 번 더 동학년 선생님 모임할 때  오늘만 한 번 더 이렇게 나의 염색의 역사는  이어져 왔습니다.


어느 날인가부터 거울은 보면 내가 없습니다.

거울 속에는 시골에 계신 우리 어머니가 나를 보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그리  닮은 것 같지는 않았는데  나이가 드니 저 거울 속의 여인은 시골에 계신 우리 어머니가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염색을 하고 싶어 지겠지요. 한번 더, 한 번만 더...,,,


현직에 있을 때 3주일 만에 했던 염색을 퇴직 후에는 2-3달 만에 한 번씩 했습니다.

염색한 후 1달 까지는 그냥 다니고 그 후는 모자  모자를 쓰고 다녔습니다.  쓰고 나가려면 그리 예쁜 모자는 없는데 집에 걸려있는 모자만 10개가 넘습니다. 그것도 겨울모자만 10개, 여름 모자 10개 정도입니다.


흰머리를 바라보고 있으니 10살은 나이 더 먹어 보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염색은 포기하기 힘든 일이지요. 염색을 포기했다가는 변심을 하는 이유는 거의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것 때문일 겁니다. 벌써 만 62세의 나이인데도 좀 젊어 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나 봐요. 외모 중 헤어스타일에서 풍기는 인상이 꽤 클 텐데요.

이제 백모 스타일로 가려고 합니다. 80이 넘은 엄마도 염색을 합니다. 하얀 머리가 더 멋져 보이지만 젊어 보이고자 하는 욕망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있나 봐요.


나는 머리 아래쪽 부분은   검은 머리카락이니 모자면 쓰면 아직은 감쪽 같이 가릴 거예요.

자존심이라고 해야 하나? 뭐라 딱히 말하기 힘든 그것을 오늘 아침  하나를 내려놓습니다.


그러니 홀가분하기도 합니다. 큰 가시하나 빠지듯  마음이 가볍기도 합니다. 자존심 대신 정직함을 장착합니다. 체념과. 달관의 경지로 가는 길일까요?

박경리의 옛날의 그 집을 낭송해 봅니다. 마지막 부분이 나의 심정입니다.


나에게도 모진 세월은 가고 버리고 갈 것만 남았는지 이렇게 염색 하나 버리고 홀가분 해지는 아침입니다.


             옛날의 그 집

                                       박경리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뻐꾸기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 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 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 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숱 많아 예쁘세요. 좋으시겠어요"

미용실에 갔습니다. 긴 머리를 단발머리로 잘랐습니다. 잘 아는 원장님이라 고데기로 약간의 서비스도 해주셨습니다. 아직 모자를 쓰면 감쪽같습니다.

그런데요. 반전이 있었습니다.  내 앞의 파마를 하던 손님이 있었는데요. 흰머리 투성이인 저를 부러워하시는 거예요. 나는 흰머리 많은 것이 항상 핸디캡이 되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왜냐고요?

숱이 많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스타일이 산다고요. 진짜 부러워하더라고요. 그분은 숱이 적기는 했어요. 나도 이런 헤어스타일을 갖고도 어떤 사람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구나!

희한한 날입니다.


여고동창회-이순에 들어 더욱 멋진 친구들

오늘은 한 친구가 점심을 삽니다.  아들 결혼시킨 지 한참 지났는데 잊지 않고 저녁을 산다네요.. 이 친구는 올해 문단에 등단도 했답니다. 입이 무거워 자랑도 하지 않습니다. 그 친구는 내 브런치에 들러 말없이 라이킷을 해주고 갑니다.


우리 여고동창생들은 생기발랄합니다. 이번에 문단에 등단한 신인작가도 있고 작품전시회를 한 유화작가도 있고 사회복지사자격증을 딴 친구도 있습니다. 시니어 일자리를 찾은 친구, 봉사활동을 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그중 대박의 말을 한 친구가 있었는데요.

그 친구는 건강했는데 노모를 간호하던 중 연쇄상구균에 감염되어 온몸이 부어서 단단해지고  열도 나고 아프고 힘이 없어졌답니다.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오늘도 다른 때 단단하던 몸에 비해 아직은 조금 부은 채로 모임을 위해 나왔답니다.

얘들아, 지금 건강하게 이 자리에 나온 것 그 자체가 축복이고 자랑이다.

포도상구균이나 연쇄상구균 등 세균은 입으로 들어간다면 위산으로 소독되고 간에어 해독이 되어 피해가 덜하지만 피부를 통하여 감염되면 균이 혈관 속으로 침투 금방 온몸으로 퍼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 균은 항생제가 아니면 치료가 되지 않는데  독한 약기운이 감염된 부분뿐만 아니라 온몸에 작용하므로 치명적일 수도 있다 합니다.

 맨발 걷기를 하는 친구에게도 발에 상처가 있으면 걷지 말라고 하고  피부 관리, 손 씻기 등 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금 좋은 것 하고 싶은 것 다하라 합니다. 예쁜 보석이나 액세서리 등 잘 착용하고 현재를 즐기라 합니다.

지금 건강할 때, 친구들 만날 수 있을 때 맛있는 것 먹을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다하자고요.


100년 살아보니 65세에서 75세 사이가 인생의 황금기더라는 김형석 교수의 말씀도 있고 자녀부양의 의무가 없어지고 부부만 신경 쓰며 살아가는 현재 우리들이 제일 행복한 황금기라는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그 후 여고 동창생들은 40년 전 여고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했습니다. 반은 달라도 선생님은 같았으니 말이 잘 통합니다. 기억력들도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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