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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에서 만난 새로운 감정

by 성희

홋카이도 나이타이 고원 목장,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풍경


홋카이도 아쇼로정 근처에 있는 나이타이 고원 목장.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감싸는 곳입니다. 전망대로 향하는 7km의 산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떼를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넓은 목장에 비해 소의 수는 많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정상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 그 아쉬움은 감탄으로 바뀌었죠. 멀리 보이는 산과 이어지는 광활한 초원은 10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듯한 시원함을 선사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기분을 느끼며, 많은 사람이 삼삼오오 모여 이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나이타이 고원 목장의 특별한 이야기

**나이타이(Naitai, 然帶)**는 **아이누어로 '깊은 산 속 계곡'**을 의미한다고 해요. 1972년부터 도카치 지역의 농업 진흥을 위해 소를 방목하기 시작한 이곳은, 일본에서 가장 넓은 공영 목장으로 총 면적이 약 1,700헥타르에 달합니다.

전망대 주차장 앞에 있는 나이타이 테라스에서는 지역 특산품을 활용한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우유로 만든 부드러운 소프트 아이스크림과 도카치규(十勝牛) 패티로 만든 수제 버거는 꼭 맛봐야 할 별미라고 했습니다.

오래전 50대 초반에 전업주부가 된 남편이 넉넉지 않은 식비 때문에 늘 저와 아이들 것만 사오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나는 괜찮아, 햄버거 별로 안 좋아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햄버거가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요? 자신의 몫을 아끼고, 가족에게 양보했던 그 마음이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이번엔 꼭 남편의 몫을 챙겨야지.'


일본어도 잘 모르는 제가 용기를 내 혼자 키오스크 앞에 섰습니다. 익숙지 않은 주문 방식에 잠시 당황했지만, 옆에서 도와주는 직원 덕분에 무사히 주문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햄버거 2개, 가격은 약 2,300엔으로 조금 비싼 편이었지만,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먹는 햄버거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죠.


가장 완벽한 뷰에서 느끼는 행복


점심시간에 맞춰 햄버거를 먹으려고 차로 돌아왔습니다. 평소에는 운전도 남편이 하고 식사 준비도 남편이 합니다. 글만 쓰는 저는 오늘은 특별히 제가 햄버거를 샀습니다.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죠.

남편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햄버거를 받았습니다. "당신 덕분에 홋카이도에서 70일 차박 여행도 하고, 이렇게 멋진 풍경도 보네. 늘 고마워. 나한테는 당신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사랑해."

아쇼로 마트에서 산 양배추도 정말 신선하고 부드럽습니다. 차에서 끓인 커피와 샐러드와 함께 점심상을 차렸습니자.

바비큐소스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문 남편은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고기가 부드럽고 소스는 흘러내리지 않으면서도 감칠맛이 나네. 여태껏 먹어본 햄버거 중에 최고인데?"


햄버거를 든 채 차 뒷문을 열었더니, 창밖으로 펼쳐진 초원 풍경이 완벽한 뷰를 선사했습니다. 햄버거를 먹으며 경치에 흠뻑 빠지는 순간, 손가락, 눈, 마음까지 행복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번에 만난 일본인 노부부처럼 우리도 건강하여 오래오래 여행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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